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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March 21, 2000
장소: Boulder, Colorado
오늘날 많은 사람이 영성과 영적 지도자에 관해 큰 야심을 품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신의 메신저이며, 자신의 신념과 관계와 이상이 실제로 자신보다 더 큰 어떤 것이라고 정말로 믿는다. 그들은 신의 메시지가 드물게 전해진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이 입장을 고수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신의 대리인으로 자처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적어도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는 아니다.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그들의 야심과 이념이다. 그들은 야심과 이념이 있으므로 이런 가정을 하고, 심지어 자신이 신적 권위를 부여받았다고 열렬히 생각하고 믿는다. 그들은 자신의 메시지가 심오하며 더 큰 근원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말했듯이, 신의 메시지는 드물기 때문이다. 신의 메시지는 자주 전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야심을 품은 자들을 통해서는 결코 전해지지 않으며, 스스로 거창한 역할을 부여하는 자들을 통해서도 결코 전해지지 않는다.
실제로 진짜 메신저로 선택된 이들은 오히려 주저하며, 심지어 자신은 아니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들은 그 일을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일을 요청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기에 그 일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들은 정말로 세상에서 특사나 메신저로서 빛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들에게 거의 고통에 가깝다. 그들은 나서기 싫어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매우 신중하다. 그렇지만 바로 이 사람들이 진정한 메신저로 선택받으며, 그 수는 많지 않다. 그 밖의 모든 사람은 메시지를 지원하기 위해 선택되거나 임명된다.
신이 인류에게 심오한 메시지를 자주 전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일이며, 그다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야심을 품은 이들은 더 높은 근원에서 온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과 특권을 스스로에게 부여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사람들은 종종 개입 세력의 대리인이 되어 회유책 전반을 지지하게 된다. 그들은 영적인 것에 대해 매우 확고한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그런 다음 자신이 믿는 것을 입증하고 큰 진리의 대변인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기 위해 더 높은 힘들에 호소한다. 이것이야말로 개입 세력에게 얼마나 완벽한 기회인가!
이런 역할과 책임을 자신에게 부여하는 이들은 창조주가 보낸 특사가 아니다. 기껏해야 그들은 자기 자신의 야심과 실패한 이념이 만들어 낸 특사에 불과하다. 최악의 경우 그들은 자신이 전혀 알아볼 수조차 없는 세력들의 하수인이 되어 출처조차 알지 못하는 것들을 지지하고 대변하며 제안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이 드러내 보여주는 것을 자신이 지어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들은 심지어 자신이 지어냈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원하지 않으므로, 출처가 어디든 자신에게 일종의 영적 힘으로 보이는 다른 어떤 곳에 자연스럽게 호소할 것이다. 이처럼 자신을 속이고 미화하는 행위야말로 그들을 외부의 조종에 극도로 취약하게 할 것이다.
이들은 진짜 메신저가 도착했을 때, 그 메신저를 부인할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짜 메신저로 인해 모욕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짜 메신저에게 감명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짜 메신저라면 자신들처럼, 혹은 자신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습처럼, 역동적이고, 위엄이 있으며, 매우 자신만만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메신저들은 결코 그런 모습이 아니다.
그래서 자신이 메신저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진짜 메신저가 왔을 때, 가장 가혹한 비판자가 된다. 왜냐하면 자신의 입지가 위협받고, 자신의 이념이 위태로워지며, 신의 권능에 의해 자신이 임명되었다는 것이 의심받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는 모두 신의 메신저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다른 사람에게 누구나 스스로 임명할 수 있다는 이 개념을 퍼뜨리려 할 것이다. 그러면 그중 일부는 자신의 낮은 자존감을 상쇄하고, 또 자신에게 부족한 정체성과 방향성을 부여하는 수단으로 이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여기에 열렬히 반응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앎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자신을 미화하고 인정하기 위한 개인적 마음의 산물일 뿐이다. 그들은 세상의 더 큰 영적 권능을 승인 도장으로 여기고, 이 승인을 자신이 스스로 한다. 그들이 듣는 목소리, 그들이 선택하며 심지어 원하기까지 하는 목소리는 오직 자신에 대한 견해·믿음·관념을 입증하는 목소리들뿐이다.
현재 모든 종교 안에는 이런 사람이 많다. 모든 종교에는 자신이 메신저라고 믿는 사람, 세상에 제시하고 보여주어야 하는 큰 진리를 지니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광신적이고 파괴적일 수 있는 이들이며, 물론 자신이 신의 안내를 받는다고 믿으므로 직접 나서서 상황을 통제하려 들고, 무엇이 정의롭고 불의한지, 무엇이 영적으로 옳고 그른지를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다.
앎을 따르는 학생은 누구나 이런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 앎을 따르는 학생은 누구나 “나는 이곳에서 자아를 실현하려고 하는가?”라고 자문해야 한다. 만약 봉사하러 왔다면, 당신은 대단히 겸손해야 한다. 만약 진정한 학생이 되려고 왔다면, 당신은 자신이 창안한 여행이 아니라, 더 큰 길을 따라야 한다. 만약 당신 삶에서 앎의 진실과 앎의 현실을 진심으로 추구하고자 한다면, 당신은 자신에 대해 가정하는 일 없이 겸손한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그리고 당신은 자신의 접근 방식을 사실상 앎에 전혀 기반을 두지 않는 이념 위에 세워서는 안 된다.
겸손, 인내, 끈기, 정직, 신중함, 분별력, 이 모든 것은 진정한 성취를 위한 필수 자질이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 특히 영적 지도자라고 자처하는 많은 사람에게서 이러한 자질들이 드러나는 것을 보기는 어렵다.
심령술이나 투시력이 있다거나, 독특하고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외부 세계에서 오는 조종에 특히 취약하다. 그들은 영적 위계에서 자신을 매우 높은 위치에 두고, 인간들 사이에서도 자신을 아주 독특하다고 여기며, 자기 생각에 대한 인정과 승인을 갈구하기 때문에, 조종당하기에 매우 적합한 대상이 되며, 온갖 형태로 나타나는 개입 세력에 쉽게 동조할 수 있다. 이제 기꺼이 큰 힘을 섬기려 하며, 자신이 그리할 수 있는 자질을 부여받았다고 믿으면서, 그들은 스스로 특사의 역할을 자임한다.
이런 사람들을 매우 주의하라. 그들 앞에서는 침묵하라. 하지만 명확히 보라. 진짜 메신저는 결코 자신의 존재를 강경하게 내세우지 않으며, 자신에게 특별한 선물이나 힘이 있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자신이 진짜로 임명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야 할 때조차, 그들은 오히려 주저하면서 말할 것이다. 그들은 역동적이거나 강하지 않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들은 경솔하지 않으며, 떠들썩하거나 자신만만하게 행동하지도 않는다.
영적 특사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진짜 특사가 나타나도 사람들은 그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조용하기 때문이며, 떠들썩하거나 자신만만하게 행동하거나 경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관심은 모두 자기 자신을 크게 선전하고,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자랑스럽게 자신을 내세우는 사람들에게 쏠리기 때문이다.
진짜 특사를 누가 알아볼 수 있는가? 당신은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가? 우리는 이미 이 질문에 답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그들 메시지의 내용으로 알 수 있으며, 그들의 접근 방식이 얼마나 겸손한지를 보고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거짓 겸손인지, 아니면 정말로 진실한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말했듯이, 선택받은 이들은 오히려 주저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말 자신을 내세우고 싶어 하지 않는다. 만약 그들이 자신을 내세우려 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도록 요구받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것은 매우 중대한 문제이다. 진짜 특사들은 독특하고 주목할 만한 어떤 것을 세상에 가져온다. 그들은 단순히 대중적인 생각들을 반복하지 않으며, 자신의 영적 능력이나 직관력을 주장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특별함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그들의 메시지에 담긴 내용을 보라. 그들의 메시지가 그들 자신이나 그들의 능력에 관한 것인가? 아니면 그들보다 진정으로 더 큰 어떤 것에 관한 것인가? 그들의 메시지가 그들의 특별함을 강조하는가, 아니면 더 큰 어떤 것을 말하는가? 그들의 메시지가 실제로 새롭고 혁명적인가, 아니면 수많은 다른 이가 주장한 것을 단순히 다시 말한 것에 불과한가? 다시 말하지만, 자신을 내세우는 이들은 선택받지 못했으므로 진짜 특사가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설명한 이러한 경향들 때문에 선택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진실한 것과 특별한 것을 찾는다. 만약 진짜 특사라면, 정말로 새로운 어떤 것을 제시할 것이다. “이 특사는 정말로 새로운 어떤 것을 제시하는가? 아니면 그저 자신을 내세우고, 당시에 인기 있거나 관습적인 것, 또는 급진적으로 보이지만 이미 과거에 다 기록된 내용을 이용하는가? 그들이 말한 내용에 진정한 실체와 가치가 있는가?”라고 자문해 보라. 어떤 이들은 “가르침은 모든 수준에 존재한다. 모든 영적 가르침은 유효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변명에 불과하다. 그저 핑계일 뿐이다.
진짜 특사는 극소수이다. 봉사하도록 부름받은 사람은 많고, 진실한 방식으로 봉사할 수 있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진실한 방식으로 봉사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특사가 된다는 것, 대리인이 된다는 것, 메신저가 된다는 것은 정말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그것은 극소수에게만 허락된다.
그리고 선택된 사람들이 이 역할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역할 자체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선택된 이는 새롭고 도전적인 어떤 것을 표현하도록 요구받는다. 삶에서 어떤 역할을 맡기 위해 자기 자신에 대한 모든 관념을 넘어서도록 요구받으며, 심지어 자기 자신도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것을 제시하도록 요구받는다. 그리고 비난과 조롱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며, 인류의 양심을 향한 거대한 투쟁의 한가운데 서게 된다. 또한 친구와 가족을 잃게 되고, 사회적 지위를 잃게 되며, 결과가 불확실한 미지의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이것들은 진정한 방식으로 봉사하는 사람이 겪는 시련이 아니다. 이것들은 진짜 특사인 사람이 겪는 시련이다. 이것이 과연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정말 원할 만한 일인가? 겉보기에 거의 인정도 지지도 받지 못한 채, 이런 어려운 여행을 하고, 큰 짐을 짊어지는 일을 야심가나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목표로 삼겠는가?
그래서 야심을 품은 이들은 결코 선택되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의 성향으로 인해 결코 선택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 큰 책임에 자신을 내어주지 않을 것이므로 결코 선택되지 못한다. 그들은 인정받고 자신을 미화하고자 하지만, 진짜 메신저와 특사가 하는 역할은 그런 것이 아니다.
예수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라. 물론 그는 큰 주목을 받았지만, 그의 진정한 동행자들은 누구였는가? 그의 사역 내내 그에게 충실한 이들은 누구였는가? 그의 대변인이자 증인이 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이들은 누구였는가? 야심가들이었는가? 자기 이익을 추구한 이들이었는가? 영적 자만에 빠져, 자신만의 독특하고 특별한 힘과 선물을 주장한 이들이었는가? 아니다. 그들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가 죽고 난 뒤에 나타나 자신들이 그의 대변인이라고 주장했다.
모든 종교에서 이런 일은 일어나며,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정말로 매우 슬픈 경향이지만, 오늘날 인류의 상태에 내재하여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선택되는 것을 결코 기다리지 못한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을 선택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믿고 자신을 내줄 어떤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정체성과 목적과 의미가 필요하다. 비록 실제로 신의 선택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신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선택하고, 자신이 신의 대변인이자 특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메시지에는 어떤 실체도 독창성도 없다. 그들이 강조하는 것은 가르침이 아니라 자신이다. 교사가 가르침보다 더 중요해질 때, 혹은 교사가 가르침 자체가 될 때, 경계하라. 주의하라.
이런 특사들이 세상을 떠나면, 무엇이 남는가? 그들이 남기는 유산은 무엇인가? 자신을 내세우던 그들이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된 지금, 진정한 실체와 가치가 있는 어떤 것이 뒤에 남아 있는가? 아니면 그들은 단지 자신을 위한 광고판, 자신이 공언하던 힘과 능력을 위한 광고판에 불과했는가?
앎의 학생은 여기서 진정한 분별력을 발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이 가르침을 위해 특사를 선택했다. 큰 공동체 앎길을 전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주장할 수 있는 그 밖의 다른 이는 아무도 없다. 심지어 마샬이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특사는 없을 것이다. 오직 그가 시작한 일을 이어가도록 임명된 사람들만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적극성, 매력, 야심 때문에 선택되지 않을 것이다. 선택될 이들은 소박하고 겸손하며 자신을 내세우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이야말로 신뢰할 수 있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메시지를 변질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앎의 학생은 창조주의 이름이나 영적 대리인의 이름으로 자신을 내세우는 이들의 거짓을 반드시 알아차려야 한다. 분별력을 사용하라. 우리가 알려준 기준을 적용하라. 단지 신의 종이 되기만을 원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라. 왜냐하면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그들은 종이 되어 있고, 혹시 아직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이제는 메시지를 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정말로 높은 경지에 올랐고 진보했으며 특별한 능력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들을 살펴보고, 그들의 말을 살펴보라. 앎은 오직 앎에만 응답할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 내면에 있는 앎이 반응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떠나는 것이 낫다.
이미 마샬에게 접근하여 자신이 계시에서 그의 동반자라고 공언한 이들이 있었으며, 그들은 메시지의 일부가 자신에게 있고, 마샬에게 다른 일부가 있다고 말했다. 마샬은 그들을 거부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런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게 될 것이며, 그들은 당신들 가운데서 나타날 것이다. 심지어 자신들이 큰 공동체 앎길의 특사라고 공언하면서, 한 사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많은 메신저가 있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계시가 세상에 전해지는 방식이 아니라고 매우 분명히 밝혔다. 이것은 진정한 입문이 일어나는 방식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글쎄, 이것은 오로지 마샬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는 자신이 유일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면서, 영적 선물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다른 모든 이를 부정하고 있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마샬은 선택받은 것이지, 스스로 자신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단지 자신과 이 권한을 나누어 가졌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그가 거부한 것은 그리하도록 요구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특별해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안다. 어떤 사람들은 영적으로 특별해지고 싶은 나머지, 심지어 자신이 영적으로 특별하다고 믿고, 그 특별함이 큰 영적 힘들에 의해 확인받았고 기름 부음을 받았다고 믿는 지경까지 이른다. 그들은 마샬을 바라보며 “그래, 그도 우리 중 한 명이야. 수많은 특사 중 한 명이지.”라고 말할 것이다. 심지어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아, 그래, 당신도 특사가 될 수 있어. 그저 마음을 열고 자신을 내어주기만 하면 돼.”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이것의 본질은 마샬이 아니다. 비록 그가 특별한 임무를 받았고, 그것도 독특한 임무를 받았지만, 이것의 본질은 그가 아니다. 왜냐하면 마샬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가 남긴 것은 위대하고 깊으며 오래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그가 진정한 특사이자 참된 메신저라는 확실한 증거이다. 왜냐하면 메시지는 그에 관한 것이 아니며, 그보다 더 위대하기 때문이다. 그는 메시지에 관해 세상에서 가장 권위자일지 모르며, 메시지를 가르치는 교사일 수도 있지만, 메시지는 더 크다. 메시지의 본질은 마샬이 아니다.
마샬은 특별한 능력을 지녔지만, 이 능력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그와 매우 가까운 사람들, 그리고 성스러운 기록들을 통해 이것을 알아볼 수 있는 극히 드문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가 누구이고 어떤 존재인지 그 실체를 정말로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도 큰 공동체 앎길의 특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주의하라.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기만에 빠져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그들을 이끄는 자들에게 속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의 새 메시지를 전하는 데는 오직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이 사람은 삶에서 큰 짐을 지고, 심각한 어려움을 마주할 것이며, 많은 희생을 치를 것이다. 그 사람은 야심이 없을 것이며, 자신을 내세우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선택받은 이들은 결코 이러한 성향이 없기 때문이다.
메시지를 가져오는 데는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메시지를 실행하고, 실체화하며, 실연하는 데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이것은 다른 모든 사람의 몫이다. 그들은 여러 면에서 더 쉬운 임무, 더 행복한 임무를 맡지만, 이 임무에도 큰 도전들이 있다.
삶에서 자신의 참된 길을 찾으려면, 큰 분별력과 신중함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제시된 선택지가 많고, 유혹도 많기 때문이다. 자칭 영적 교사라고 말하는 어떤 이들은 자신이 당신을 영적 교사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치 자신에게 신의 특사를 임명하고 기름 부을 권한이 있는 것처럼, 누구든 영적 교사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래, 당신에게도 신에게서 온 메시지가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신에게서 온 메시지가 있다. 내 세미나에 오면, 그 방법을 알려 주겠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이런 방향을 제시하고, 추종자들에게 이 특별한 선물을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래, 모든 사람에게는 신에게서 받은 독특한 선물이 있다.”라고 말할 것이다. 사실 그것은 맞는 말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독특한 선물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특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매우 주의하라. 참된 교사와 참된 학생은 종종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오직 자신만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내는 소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입과 회유책의 본질 때문에 당신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개입을 지지하는 이들은 십중팔구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고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사람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참된 특사의 길을 더 어렵게 만든다. 왜냐하면 이제 실망과 의심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많은 교사가 거짓 교사임을 알아차렸고, 이제 모든 교사를 의심한다. 그래서 진짜 특사가 나타나면, 그는 이 모든 것의 직격탄을 맞을 것이다. 자신을 실제로 입증하지 못한 수많은 다른 이의 실패 때문에, 그는 의심과 비방과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영적 임명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우리가 이런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영적 임명이란 선택받는 것이지,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누가 선택되고, 왜 선택되는지, 특사가 된다는 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며 무엇을 요구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다양한 수준에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많으며, 당신이 자신에게 특별한 능력이나 재능을 스스로 부여하지 않는 한, 당신은 그것들을 가르칠 수 있다. 자신을 신의 메신저나 특사라고 부르지 말라. 당신이 특사나 메신저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스스로 자신을 임명한 것이지 임명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창조주는 누가 선택되는지에 대해 지극히 신중하다. 그리고 선택받은 이들은 자신이 진정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 선포하는 것을 매우 주저할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가르침, 자신의 메시지에 대해 쏟아내는 온갖 소음과 허황된 주장들 사이에서 선택받은 이들은 주목받지 못할 것이다. 참된 학생은 참된 교사를 찾는 일에 정말 매우 인내해야 한다. 왜냐하면 참된 교사는 드물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상의 후미진 곳에 머물며, 밖으로 나와 자신을 내세우지도, 특별한 재능이나 영적 은사를 내세우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