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shall Vian Summers
on 4월 6, 1992
1992년 01월 26일
미국 콜로라도 보울더에서
마샬 비안 서머즈가
받다
큰 공동체 세력의 지구 방문은 매우 중요한 주제이지만, 아주 다양한 것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먼저, 다양한 그룹이 각기 다른 목적으로 확실히 지구를 방문하고 있다는 것을 바탕으로 말하겠다. 어떤 그룹들은 인류의 기술을 평가하고 인류의 특성을 알아보고 싶어 하며, 인류의 기질과 성향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생물학적 유전암호를 알아내고 싶어 한다. 어떤 그룹들은 인류가 상업과 무역에 참여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지구에 온다. 또 어떤 그룹들은 아주 오래된 보관소를 찾고 있으며, 그들이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기술이 있고 물질 환경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들을 모집하여 이용하려고 지구에 온다.
비록 많은 사람이 여전히 부인하지만, 지구를 면밀히 조사하는 세력이 있다는 사실은 이제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증거는 매일 늘어난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 중 일부는 정확하지 않으며, 일부는 명백히 거짓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설명이 주관적이고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많은 것이 사실이다.
지구에는 방문자가 있으며, 지구를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 그런데도 인류는 전체적으로 볼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실제로 세상의 많은 지역에서, 삶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같은 문화권 안에서 일어나는 충돌, 다른 문화권 사이에서 일어나는 충돌은 사람들의 관심을 지배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인간 삶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모든 일에서 큰 공동체가 드러나고 있다. 당신은 인류가 큰 공동체에 출현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인류는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 그래서 현실적인 이유로, 큰 공동체 세력이 인류 안으로 출현한다는 것을 바탕으로 말하겠다.
이것의 결과는 엄청날 것이며, 그 충격이 온전히 미치려면 몇 세대가 걸릴 것이다. 인간의 사고, 인간의 제도, 인간의 이념에 미치는 결과는 너무 방대하고 너무 총체적이어서 사람들은 지금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인간은 자신의 이해에 따라 매우 주관적인 우주에서 산다. 이 말은 우주가 주로 인간의 충동, 인간의 정서, 인간의 동기에 지배를 받는다는 뜻이다. 이런 주관적인 우주는 사실이 아니며,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이것을 알면,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크게 달라질 것이고, 자신과 주변 세상에 대한 가정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이것을 알고 나면, 분명히 사람들은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바꿀 것이 틀림없다. 인간의 동기, 인간의 도덕, 인간의 정서를 공유하지 못하는 다른 지적 생명체와의 상호 작용은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누가 지구를 방문하는가? 인류에게는 동행자도 있고, 관찰자도 있고, 적도 있다. 당신의 적들은 당신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적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류를 직접 정복하고 싶어 하지 않으며, 단지 자신의 계획에 맞게 인류를 이용하고자 할 뿐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것이 그들의 정복이다. 그들은 정신 환경을 안다. 그래서 사람들의 경험을 통제하는 데, 아니면 적어도 사람들의 의식을 제한하는 데 매우 유능하다.
우리는 사람들이 정신 환경에 대한 경험을 쌓고 이해를 키울 수 있도록 앎으로 가는 계단을 제공했다. 앎으로 가는 계단은 사람들을 영적으로 더 성장하게 하고, 그들이 더 성취감을 얻고 더 보람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정신 환경을 직접 경험하게 한다. 왜냐하면 이 부분에서 당신은 성장해야 하며, 큰 공동체의 다른 지적 생명체와 교류하려면, 이 부분에서 진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지적 생명체들이 지구까지 여행했으므로, 그들은 기술적으로 아주 확실히 더 우위에 있으며, 또한 큰 공동체에 있는 다른 종족들을 어느 정도 상대해야 하므로, 정신 환경이나 사고 영역을 파악하는 데 매우 영리해졌다는 점을 잊지 말라. 인간이 자신과 환경에 대해 더 객관적일수록, 자신이 사는 정신 환경을 분별하는 능력이 더 향상되고, 결국 통제할 수 있는 능력도 더 향상될 것이다. 이것이 무기로 사용된다는 뜻은 아니지만, 방어 측면에서 매우 중요할 수 있다.
외계인과의 만남에 대한 더 충격적인 이야기 중 일부는 분명히 그들이 정신 환경을 상당히 통제한다는 사실에 있다. 사람들은 어떻게 다른 이들이 자신에게 이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어떻게 자신이 그렇게 조종당할 수 있는지, 어떻게 다른 지성 앞에서 그렇게 무력할 수 있는지 몰라 어리둥절하다. 인간끼리만 서로 교류하면 정신 환경의 측면에서 매우 제한된 성장만 있어도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 난폭한 힘과 속임수를 쓰는 데 여념이 없다. 인간의 사고를 통제할 수 있는 더 대단하면서도 더 미묘한 메커니즘을 인간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이 점에서 인간은 여전히 매우 원시적이며, 무력, 협박, 다양한 형태의 감정적 설득을 이용한다. 그렇지만 이것들은 매우 조잡하고 기본적이다. 이것들 너머에는 정신 환경과 관련된 더 넓은 영역이 있다.
여기서 인간의 윤리는 인간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적절한 기량 또한 계발되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가 제공한 준비를 공부해야 한다. 많은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 준비가 일종의 치유 요법, 자신의 불안한 과거를 치료하는 것의 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신에게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앎으로 가는 계단은 이 두 가지 역할 모두에 도움이 된다. 그런데 또 다른 역할도 한다. 앎으로 가는 계단은 정신 환경을 이해하도록 사람들을 준비시키기 시작한다. 이것은 당신이 다른 형태의 지성인 외계 생명체를 성공적으로 접촉할 수 있게 하는 데 필수이다. 다시 말해 인류에게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세력에 대응하고, 좋은 의도를 가진 이들의 도움을 활용할 수 있으며, 이 둘의 차이를 구별하는 데 이것은 필수이다. 이를 위해서는 잘 훈련되고 준비된 마음, 일종의 뛰어난 지성이 필요하며, 이 지성은 인간이 적절한 상황에서 적절한 도움을 받아 성취할 수 있다.
앎이 각 개인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필수 요소이다. 그렇지만 앎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한 개인의 개인적 마음은 앎의 매개체가 되려면 길러지고 성장해야 하며, 개인의 소질과 자질 또한 길러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앎은 여전히 잠재력에 불과하다. 앎은 항상 사람들에게 말하지만, 사람들은 들을 수 없다. 앎이 진정한 효능을 가지려면 개인 차원에서 많은 성장이 필요하다.
따라서 제공되는 방법에 따라 당신이 앎의 성장에 참여하도록 우리는 강력히 권장하는 바이다. 이 방법들을 어떤 식으로도 바꾸지 말라. 당신은 단순히 이 방법을 받아들이고, 이용하고, 최선을 다해 연습해야 한다. 당신이 이 방법을 바꾸면, 이 방법은 효과를 잃는다. 여기서 오류는 사람들이 앎으로 가는 계단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앎으로 가는 계단을 일종의 심리 치료로 여기거나, 영적 길로만 여긴다. 영적 길은 모두 심리 치료의 요소를 포함하며, 진정으로 치유에 도움이 되는 것은 어떤 것이든 사람들을 영적 삶에 참여하게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매우 중요한 시기에 이 교육 과정을 제시한다. 우리는 인간이 다른 지적 생명체와 성공적으로 접촉하도록 준비시키기 위해 이 교육 과정과 이 가르침도 제시한다. 성공적으로 접촉하려면 당신은 영적으로 성장해야 하고, 더 큰 이해와 능력을 미리 갖추어야 한다.
만약 당신이 잠깐 지구 밖 멀리서 지구를 관찰한다면, 실제로 인간이 얼마나 취약하고, 정신 환경에 대해 아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 알 것이다. 비록 인간들은 자신이 놀랍도록 복잡하고 대단히 예측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인간은 쉽게 예측할 수 있고 실제로 전혀 복잡하지 않다. 일단 관찰을 통해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고 유전적으로 인간에 대해 충분히 알게 되면, 당신은 인간이 어떤 영향이나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에 대한 감을 잡게 될 것이다.
이 조사는 현재 진행 중이다. 특정인들이 성향과 취약성을 바탕으로 선택된다. 말하자면, 그들은 실험실의 동물처럼 이용된다. 조사하는 이들은 악의적인 뜻으로 그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인간의 윤리가 없을 뿐이다. 인간은 흥미롭고, 잠재적으로 위험하며, 유용한 연구 대상으로 간주된다. 인간이 동물의 안녕을 크게 고려하지 않고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는 것과 거의 마찬가지로, 인간도 동일한 방식으로 연구된다. 이 실험을 수행하는 이들이 가치 있게 여기는 인간의 특성이 있고, 아직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특성이 있다. 인류를 돕기로 한 세력들은 이러한 실험을 수행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이 정보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생각을 더 낫게 하고 행동을 더 낫게 하고 기분을 더 낫게 하는 것이 전부인 심리 치료의 영역에 머무르고 싶어 한다. 어떤 이들은 신을 찾는 탐구에 진력하고 싶어 한다. 이 모든 것이 그들에게는 자신이 떠나야 한다고 느끼는 더 큰 여행에 집중하지 못하게 막는 방해물이다. 또 어떤 이들은 내가 말하는 것에 매료되지만, 영적 측면이나 심리 치료 측면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은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신이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 혹은 어떻게 참여하지 않을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여기에는 다양한 의도가 있고, 결과적으로 다양한 결론이 나온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며, 중요한 것은 어떤 이들이 인간을 면밀히 조사하고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을 연구하는 이들은 실연된 많은 것과 남겨진 증거를 통해 인간이 실제 만남에서 어떻게 반응할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이것은 사전에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다. 단지 소수의 사람만이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자신의 통찰력과 자제력을 통해 이 상황이 실제로 매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많은 사람이 우주에 자신들 외에 다른 생명체와 지성이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큰 공동체 앎길이 지금 소개되고 있다. 사람들은 큰 공동체 앎길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른다. 큰 공동체 앎길에는 단지 영적 준비만 있는 것이 아니며, 일종의 치료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앎길은 온갖 다른 것들을 말하는데, 이것들은 어떤 면에서 보면 매우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보이며, 또 매우 신비롭게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이 정보를 접하고, 이 모든 것에 다소 놀란다. “지구에 방문자가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가 숨을 곳을 찾아야 하는가? 대환영을 해야 하는가?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하는가? 즐거운 기대감 속에서 살아야 하는가?” 답은 뛰어난 지성을 개발하고, 당신의 영적 마음인 앎에 다가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앎은 인간이 상호 작용하는 맥락은 물론 다른 지적 생명체와 상호 작용하는 맥락에서도 삶을 성공적으로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한 지혜와 안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답은 정신 환경을 배우는 데 있고, 당신 삶을 조화와 균형으로 이끌어서 당신이 더 큰 형태의 준비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 이것이 바로 요구되는 것들이다. 당연히, 즐거운 기대 속에서 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선하지 않은 세력, 인류의 안녕에 도움이 되지 않는 목적으로 인간을 이용하는 세력이 실제로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다. 요구되는 것은 책임, 지혜, 특정 형태의 자율권이고, 지성이 무엇인지, 서로 다른 지성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에 대한 더 큰 이해이다.
지구는 다세계 큰 공동체에 출현하고 있다. 큰 공동체는 지금 여기 있지만, 인간은 준비되지 않았다. 인간은 취약하다. 인간은 너무 자기중심적이고 삶에 대해 주관적 관점을 가지므로, 자신의 관념에 맞지 않거나 기대에 부합하지 않는 어떤 것과 마주치거나 그것이 자신의 환경에 있을 때, 부인을 하거나 아니면 부분적으로 인식한다. 어느 쪽이든 모두 위험할 수 있다.
큰 공동체 앎길은 자신이 공동체에서 산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을 위한 영적 준비이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것에, 또 바로 지금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정신적⋅육체적 자원에, 온전히 접속해야 함을 깨닫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심리 치료이다. 큰 공동체 앎길은 더 지성적으로 살기 위한 준비, 어떤 면에서는 더 복잡한 우주에서 살기 위한 준비이다. 인류의 현재 사고방식을 사용하여 다른 지적 생명체 앞에서 반응하면, 그 접근 방법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부적절하고 불행한 결말로 이어질 것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객관성, 분별력, 자제력이다. 이러한 자질은 갖추기가 어렵지만, 평상시 이곳의 삶뿐만 아니라 특별한 상황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큰 공동체 앎길이다. 이것은 큰 공동체 삶을 살도록 사람들을 준비시키기 위한 것이다. 당신은 큰 공동체에서 살기 위해 우주선을 타고 먼 행성으로 날아갈 필요가 없다. 당신은 지금 큰 공동체에서 살며, 늘 큰 공동체에서 살았다. 당신은 고립되어 있지 않다. 지구에 고립이란 없다. 큰 공동체가 당신에게 드러난다. 이곳에는 당신을 돕는 세력이 있고, 당신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 당신은 그 차이를 어떻게 아는가? 당신은 이것을 어떻게 분별하는가? 당신은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가? 당신은 어떻게 자신을 보호하는가? 당신은 어떻게 건설적인 소통 라인을 구축하는가? 당신은 어떻게 파괴적인 소통 라인을 단절하는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마음의 큰 준비가 필요하다. 사람들에게 자기 내면에서 한결같아지는 것이 필요하고, 균형 잡히고 민감해지고 능력 있고 책임지는 것이 필요하며, 효과적으로 행동하고 자기 행동을 자제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특별한 상황에 맞추어 특별한 성장이 필요하다. 이 준비가 없다면, 사람들은 예측할 수 있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고, 대체로 그들의 대응은 자신의 개인적 필요에 좌우될 것이다. 비록 증거가 수집되고 사건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해도, 여전히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과학은 그것에 답할 수 없다. 이성은 그것에 답할 수 없다. 희망을 품는 것으로는 그것에 답이 될 수 없다. 두려움에 찬 자기방어는 그것에 답이 될 수 없다. 무엇이 그것에 답이 될 수 있는가? 여기서 당신은 다른 마음으로 이 질문을 해야 하고, 다른 눈으로 보아야 하며, 다른 경험을 해야 한다. 그러면 당신 삶에 대한 많은 신비가 풀릴 것이다.
인류가 자신을 이해하는 맥락은 바로 인류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것은 중요한 개념이다. 최근까지는 더 깊은 질문을 한 사람들 대부분이 사람들의 상호 작용과 세상의 자연력 관점에서만 생각했다. 신과 인간의 관계에 관해서도 많은 고찰이 있었다. 실제로 이 마지막 범주에서 다른 두 범주보다 더 많은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인류는 더 큰 맥락에서 산다는 것이다.
인류는 창조물 가운데 중심이 되는 존재가 아니라, 단지 창조물이 발전하는 측면 중 하나일 뿐이다. 이것은 이해하는 데 엄청난 발견이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는 큰 문턱이며, 세상과 관계를 효과적으로 맺는 능력이다. 이것은 직접 앎으로 가는 계단을 공부할 기회와 성향이 당신에게 있다면, 바로 앎으로 가는 계단이 당신에게 준비시키는 것이다. 이 준비는 세상 너머에서 왔다. 왜냐하면 이 준비는 큰 힘이 보냈기 때문이다. 이 큰 힘은 인류가 살아가는 방식을 알고, 동시에 인류가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큰 공동체가 살아가는 방식을 안다.
희망으로 반응하지 말라. 두려움으로 반응하지 말라. 앎으로 대응하라. 이렇게 하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당신은 이 준비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인류의 종교에서? 다양한 심리 요법에서? 다양한 철학에서? 거의 예외 없이, 이러한 영역에서 이루어진 가장 큰 발견조차, 인간이 서로에 대해 책임이 있고, 멀리 떨어져 있는 신성한 현존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이해한 상태에서만 가능했다. 그런데 당신은 더 큰 무대에서 살며, 이제 그 무대의 참여자가 된다. 이것은 늘 당신의 운명이었다. 단지 이것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만 불확실했다.
이 가르침은 창조주에게서 오며, 딱 맞는 시기에 온다. 사실 이 시대의 상황이 이 가르침을 불렀다. 어떤 사람은 이 가르침을 자신의 종교라고 부를 것이고, 어떤 사람은 이 가르침을 자신의 심리 요법이라고 부를 것이다. 대다수는 이 가르침이 그들의 범주를 넘어서므로 무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를 것이다. 이 가르침은 중대한 문제에 대한 현명한 답이며, 인류의 영적 필요성에 대한 답, 인류에게 필요한 많은 치료에 대한 답이다. 하지만 이제 이 가르침은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에 대한 답으로 제시된다. 지금은 인간이 다른 지적 생명체가 있는 것을 설명하기 시작해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환상이 아니다. 사실, 이 현실은 사람들에게 더 현실적이 되고, 더 객관적이 되고, 더 관찰력 있고, 확실히 더 자비롭게 되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지혜를 요구한다. 이 지혜는 세상 너머에서 와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 안에서는 지혜의 발전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이것은 이 세상 너머에 이 세상을 도울 수 있는 지혜가 있다는 뜻이다. 당신은 우주선을 타고 가서 이 지혜를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이 지혜가 당신에게 전해진다.
당신들 사이에 있는 현자들은 자신의 일생 동안 인간 사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서 놀라운 일련의 사건들을 목격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큰 공동체와 관련하여 당신이 처한 곤경은 지혜를 불러낼 것이고, 또 그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준비가 전해졌다. 물론 많은 사람이 그 준비를 할 수 없을 것이고, 준비하는 사람 중 상당수가 실패하거나 도중에 길을 잃을 것이다. 하지만 그 준비는 여기 있다.
내가 말하는 이 논의에서, 당신이 어떤 기본적인 현실을 깨닫고, 이 현실에서 요구하는 당신 성장의 필요성을 깨닫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성장이 없으면, 당신은 더 광범위한 상호 작용에서 무기력한 참여자가 될 것이며, 다른 이들의 의지와 의도에 설득당할 것이다. 당신이 지구의 역사를 통해 알다시피, 영토와 부와 권력을 차지하려는 경쟁은 원하지 않는 많은 결과를 초래했다. 큰 공동체에도 영토와 부와 권력을 차지하려는 경쟁이 있지만, 지성에 대한 경쟁도 있다. 지성은 매우 가치 있는 상품이다. 지성이 클수록, 이 의도를 가지고 지성을 추구하는 이들이 부와 권력을 더 많이 획득한다.
현자들 역시 지성을 추구한다. 왜냐하면 지성이 있어야 교육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육이 있어야 발전이 있을 수 있고, 발전이 있어야 새로운 이해와 새로운 행동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장려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내가 암시한 상황과 상황의 심각성은 단지 이 정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필요성, 또 받아들일 준비가 된 이들이 진정한 준비를 시작해야 할 필요성을 가리키는 역할을 할 뿐이다.
우리가 당신과 공유하는 모든 것은 더 큰 이해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당신이 더 큰 삶에 참여하려면, 더 큰 이해가 필요하다. 큰 공동체는 더 큰 삶을 의미한다. 큰 공동체는 당신이 미래를 준비할 것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당신의 미래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큰 공동체와 접촉하면 이것이 사실로 분명히 밝혀질 것이다. 이 전환을 성공적으로 하려면, 당신의 성장이 필요하다. 그리고 삶에 대한 더 큰 이해, 즉 자신의 성장에서는 물론 다른 이들과의 상호 작용에서도 지적 생명체의 방향을 결정하는 동기에 대한 더 큰 이해가 필요하다. 이것은 인간 가족 너머에 있는 다른 이들과 당신의 관계 맥락 안에서뿐만 아니라 당신의 개인적 관계 맥락 안에서도 일어난다. 여기에는 자연계와 당신의 관계, 동식물 등 모든 형태의 생명체와 당신의 관계도 포함된다. 여기서 더 큰 경험을 통해 당신은 지금 필요한 더 큰 능력을 얻을 것이다.
큰 공동체 많은 곳에 있는 현자들 사이에서는 지혜를 얻으려면 일종의 은둔이 필요하다는 관념이 있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이것은 사람이 더 강해질수록, 즉 분별력과 비전과 이해력이 더 커질수록, 그 사람은 삶에서 더 물러나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현자들이 진보함에 따라, 그들의 선물이 더 세련되고, 다른 이들의 삶에 더 지나치게 영향을 주게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제공자는 자신의 선물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줄지에 대해 더 분별력 있고 신중해야 한다. 지성은 큰 공동체에서 눈독을 들이는 상품이므로, 현자들은 자신과 자신의 선물을 보호하기 위해 은거해야 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이 상품을 이용하려고 하는 이들에게는 현자들이 매우 쓸모 있고 가치 있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것을 고려하면 현자들은 물러나게 된다.
그리하여 현자들은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모든 힘을 가능한 한 자신에게 편리하게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꽤 혼란스럽다. 그렇지만 정신 환경에서 힘을 이렇게 이용하는 것은 재앙이며, 이것은 사람들이 물질 환경과 상호 작용하는 방식에서 권력을 편법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재앙으로 판명난 것과 같다. 실제로 인류가 기술적으로 더 유능해질수록, 물질계에서 이 역량을 사용하는 데 더 많은 자제력을 발휘해야 한다. 당신이 개인적 관계의 맥락 안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강할수록, 더 많은 자제력을 발휘해야 하고, 더욱더 신중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현자들은 숨어 지낸다고 말한다. 그것은 현자들이 삶에서 도피했거나 삶에 공헌하고 싶어 하지 않거나 삶의 굴곡을 견딜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현자들이 유리한 지점으로 물러나, 그곳에서 자신의 선물을 보존할 수 있고, 또 그 선물의 수혜자들을 확인하여 가장 효과적으로 그들에게 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지혜를 전하는 것은 지혜의 길을 배우라고 당신에게 보내는 초대장이다. 담화로는 지혜를 밝히거나 자세히 설명할 수 없다. 불꽃 하나가 다른 것에 불을 붙이려면 불씨가 튀어야 한다. 나는 불이 아니라 불씨를 제공한다. 이 불은 앎의 불, 지혜의 불이다.
많은 사람이 “이 모든 것을 어디에 쓰는가? 왜 이 모든 준비를 하는가? 이것은 너무 어렵다! 더 재미있고 즐거운 일들이 많다. 왜 그렇게 심각하게 만드는가? 왜 이러한 도전을 하는가?”라고 생각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러한 결론을 내리고 자신의 길을 갈 것이다. 하지만 인간 삶에 일어나는 복잡한 것들을 보면, 즉 인간 가족 안에서 상호 작용하는 데 겪는 어려움뿐만 아니라 증가하는 큰 공동체와의 만남을 보면, 틀림없이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될 것은 당신에게는 삶에서 당신이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삶이 진정 일어나는 대로 삶을 인식하고 삶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울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면 다른 어떤 것도 비하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크게 인식하고 내적 가치를 느낀다. 사실은 이것이 진정으로 만족스러운 삶의 기반이다.
만족스러운 삶은 큰 도전을 성공적으로 대응하는 결과이다. 이제 큰 도전이 당신에게 달려 있다. 이것은 축복인가, 아니면 고난인가? 이것은 복원을 위한 수단인가, 아니면 큰 골칫거리인가? 이 질문들에 당신이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당신이 삶과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을지, 또 당신이 지금 살고 있고, 늘 살아온 큰 공동체와의 관계를 어떻게 맺을지 결정될 것이다.
나는 이 질문들을 숙고하도록 당신에게 맡긴다. 익숙한 답에 만족하지 말라. 그보다는 이 질문들이 당신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생각해 보라. 이 질문들을 깊이 숙고해 보라. 이것이 내 초대장이며, 큰 공동체를 알아보라는 초대장이다. 인간들이 서로 지혜를 얻으려고 고군분투하지만, 이제 그들은 더 큰 규모의 삶에 참여하기 위해 지혜를 얻어야 한다. 상당히 발전하고 열심히 참여한 이들은 모두 이 방향에서 어떤 진보를 이루었든 그 진보를 통해 더 큰 충만함으로 삶의 가장 작은 측면들을 더 완전하게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