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received by
Marshall Vian Summers
on 4월 14, 1992

1992년 04월 14일
미국 콜로라도 보울더에서
마샬 비안 서머즈가
받다

눈앞에 닥친 거대한 변화를 고려할 때, 또 내적으로 인류에게 필요한 것들을 충족하고 큰 공동체 출현에 대한 도전에 대응하려면 인류가 지금 꼭 해야 하는 것들을 고려할 때, 큰 자비심 함양의 중요성은 필히 강조되어야 한다. 변화는 어려우며, 심지어 아주 평범한 상황에서도 어렵다. 변화에는 흔히들 저항하고, 대개는 겁을 먹는다. 변화는 불확실성을 수반하며, 종종 남을 탓하거나 비난을 낳는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나 의도적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심지어 변화를 시도할 때조차, 그것은 종종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도전임이 드러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이제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사람들은 자비심으로 자신을 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심지어 불확실하거나, 두렵거나, 자기 동기가 상당히 의심스러울 때도, 자신을 신뢰하고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기반을 개발해야 한다. 이것은 당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 또 당신과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에 대한 확신과 안도감이 없을 때, 특히 더 그렇다. 실제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상당수가 인류의 선구자가 될 것이며, 이것은 당신이 인류 전체보다 훨씬 앞서서, 심오한 내적 변화를 겪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인식의 대가이고, 진보의 대가이며, 세상의 진화와 보조를 맞추는 대가이다. 즉 당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무언가를 알고, 보고, 느끼고, 깨닫고서 앞으로 나아가는 대가이다. 여기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당신은 이 깊은 성향들을 신뢰해야 하지만, 이 신뢰에는 깊은 성향을 적용할 때 필요한 분별력과 지혜가 있어야 한다. 대충 건성으로 하거나 안일한 마음으로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큰 힘에 자신의 책임을 넘겨주어서는 안 된다. 책임은 당신이 맡아야 하고 수행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달아나 숨어서는 안 된다. 이미 너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할 것이고, 나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겠다.”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 당신의 독특한 역할을 맡는 것은 당신 몫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방관하며 “나는 관여하고 싶지 않아.”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 당신은 관여되어 있고, 관여해야 하며, 관여되어야 한다. 당신은 그저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서 이것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세심한 주의와 이해가 필요하다. 이것이 특히 필요한 이유는 사람들의 부정적 상상력이나 건전하지 못한 성향 등 사람들의 장애가 압박과 변화의 시기에 크게 두드러질 것이기 때문이다. 압박과 변화의 시기는 사람들에게서 최고의 결과와 최악의 결과를 끌어낸다. 여기서 사람들은 자신의 안녕과 다른 사람들의 안녕에 매우 해가 되는 일들을 할 것이고, 큰 변화에 직면하여 터무니없는 입장을 취할 것이며, 이전의 시기를 회복하고자 과거로 돌아가려고 시도할 것이다. 이전의 시기는 이제 예전에 느꼈던 것보다 훨씬 더 즐거운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먼 과거인 더 이전의 서사시를 다시 재현하려고 할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경험을 부인할 것이고, 지구가 큰 공동체에 출현하는 것을 부인할 것이며, 자신이 아는 것을 부인할 것이고, 자신의 진실한 관계를 부인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어려움을 다른 사람들 탓으로 돌릴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고, 매우 강도 높은 방식으로 일어날 것이다. 왜 그러는가? 왜냐하면 큰 변화에 직면하여 사람들은 무기력하며, 큰 변화는 헌신할 수 있는 그들의 용기와 능력을 이끌어 낼 뿐만 아니라 최악의 성향도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당신은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부족 사회나 민족 집단이나 다른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빠르게 변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경쟁하면서 서로 충돌할 것이므로 엄청난 불화를 볼 것이다. 앞으로 일어날 사건 중 일부는 매우 끔찍할 것이고, 일부는 훌륭하고 고무적일 것이다.

참여자이자 관찰자이자 앎의 학생인 당신에게는 지금이 큰 자제력, 큰 인내심, 큰 자비심이 필요한 시기이다. 자제력이란 더 깊이 안에 스며 있는 반응이 일어나 당신을 인도하도록 허용하기 위해 당신이 자신의 반응 중 상당수를 보류해야 한다는 뜻이다. 많은 경우에 당신은 화난 말투나 불만 섞인 말을 억제해야 한다. 이런 참을성을 발휘하면 당신은 더 깊은 수준에 있는, 당신이 아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여기에는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당신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확실함을 기다려야 하고, 확인을 기다려야 하며, 동반자를 기다려야 하고, 지금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당신이 혼자서 설정한 목표 중 일부는 결코 달성할 수 없을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실망이 있다.

내가 말했듯이, 변화는 어떤 것을 내려놓은 다음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며, 그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기간이 필요하다. 이때 당신은 소유물이나 재정적 안정을 얻지 못할 수도 있으며, 가까운 동반자가 있을 때 얻는 정서적 안정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당신은 자신이 하는 것을 확신할 때나 자기 삶과 우선순위를 명확히 볼 때 얻는 지적 안정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실망이 있을 것이다. 이상은 실패할 것이다. 큰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간절히 바라는 것들은 절망적으로 보일 것이다. 여기서 당신은 부득이 내면에 있는 진실로 돌아가게 되며, 또 기다리는 법, 관찰하는 법, 판단하지 않는 법, 자제력을 발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더 깊은 경험에서 나온 더 깊은 통찰력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당신은 자기 위안을 주는 생각을 버려야 하고, 삶에 가깝게 삶과 접촉하고 살며, 많은 상황에서 삶에 취약한 채로 살아야 한다. 여기서 당신은 삶과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다시 맺는다. 단순히 방관자로서 안전하게 살아가며 삶이 드러나는 것을 지켜보고 나서, 당신이 선택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는 이유로 분노하고 분개하지 않는다.

지금은 직접 참여해야 할 시기이다. 이를 위해서는 특별한 준비와 훌륭한 동행자가 필요할 것이며, 당신이 결단을 내려 지구의 큰 공동체 출현에 참여하고, 인류 사회의 통합에 참여하고, 당신의 본성과 더 깊은 성향에 맞는 특유한 방식으로 물질 환경을 회복하는 데 참여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당신은 단지 관찰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당신은 참여자이기 때문이다. 만약 삶의 목적을 찾고 당신의 더 큰 기략과 진정한 내면의 힘을 깨닫고 싶다면, 당신은 이 결정을 내리고 강화하고, 이 결정에 따라 살아야 한다. 이것은 다른 누군가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달려 있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며, 응답할 힘이 있는 사람도 바로 당신이다.

이렇게 하려면, 당신은 자신을 자비롭게 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당신이 자신을 관찰하고 스스로 성장하고 재평가할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며, 또 자신이 어디에 있었고 이전의 경험에서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에 대한 감을 잡고, 많은 경우에 이유도 알지 못한 채 당신이 자신의 평가를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과 당신이 취약해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당신은 자신의 삶과 목적과 운명을 다시 규정해야 할 것이다.

이런 열린 마음과 기꺼이 취약해지려는 마음은 내적 자기 신뢰를 표현한 것이다. 이 내적 자기 신뢰는 어느 날 갑자기 당신에게 생기거나 누군가가 당신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이 내적 자기 신뢰는 어쩌면 다른 사람들의 결정과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결정을 내리거나, 이전에 당신이 자신을 위해 추구한 이점의 측면에서 보면 대가가 커 보이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형성되며, 자신에 대한 어떤 가정이나 결론을 덧붙이지 않고 자신이 아는 것에 진실함으로써 형성된다. 이 내적 자기 신뢰가 있을 때, 당신은 상실과 불확실성의 고통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하지 않고 스스로 느끼려고 할 것이며,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살려고 하기보다는, 당신의 내면에서 경험할 수 있는 역량을 더 기르려고 할 것이다.

자비는 자신을 판단하지 않고 관찰하는 것이고, 자신이 진실을 경험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진실과 함께하는 것이며, 삶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고, 편안해 보이는 것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맞추어 주려고 하는 것이기보다는 진실을 선택하는 것이며, 이익보다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다. 변화의 시기에 다른 사람들이 이득을 얻기 위해 자기 입장을 바꾸더라도, 당신은 진실과 함께 머물 수 있으므로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꾀를 부리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닥치는 많은 역경과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여기서 당신은 이익과 획득을 추구하기보다는 진실을 따르기로 선택한다. 당신의 보상은 오래 지속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실패할 것이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이나 그들의 실망에 대해 외견상 의지할 곳이나 보상이 없을 것이다.

자비는 당신이 더 큰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뜻이고, 또 다른 사람들을 비하함으로써 자기 생각을 입증하는 비난이라는 외견상의 호사를 포기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당신은 기꺼이 틀린 채로 있고, 기꺼이 혼란스러운 채로 있으며, 기꺼이 불확실한 채로 있는다. 그리고 기꺼이 어리석게 보이고, 기꺼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며, 망신당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인다. 이렇게 하여 당신은 내면에 있는 진실로 되돌아간다.

큰 변화는 사람들을 큰 문턱에 이르게 하여 어쩔 수 없이 그 문턱을 통과하게 한다. 큰 변화에서 위대한 사람들이 드러나며, 큰 변화가 일어날 때 큰 것들을 세상에 공헌한다. 다세계 큰 공동체에 출현하여 다른 지적 생명체와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이해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더 큰 무대에서 더 큰 상호 작용을 분별해야 하는 일보다 인류에게 어떤 더 큰 변화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인류 문명이 마침내 통합하여 공통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상호 이익과 발전을 제공하는 협력과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보다 어떤 더 큰 변화가 있을 수 있겠는가? 여기에는 인류가 큰 공동체에 출현하는 일이 수반되어야 한다. 인류가 큰 공동체에 출현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이 출현을 통해 모든 사람은 자신의 상황이 바뀌고,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가 바뀌고, 자아의식, 자신의 기회와 위험, 자신의 교우 관계, 자신이 아는 사람들, 자신의 우선순위와 가치관, 자신의 종교와 신 등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모두 한꺼번에 보면, 격변처럼 보이겠지만, 당신이 마침내 자신의 하찮은 선호와 집착을 극복하고, 더 큰 삶을 사는 기회이다. 세상과 연결되고 사람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들과 사람들의 열망에 연결된 삶, 진정한 관계와 깊은 만족을 수용할 수 있고 영적 삶과의 완전한 재결합을 수용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기회이다. 사람들은 그들을 자극하는 큰 상황이 없거나 큰 문턱을 통과하는 일이 없으면, 이러한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다.

당신이 진정으로 진보할 희망은 세상이 변할 때가 유일한데 세상이 변한다고 왜 불평하는가? 세상이 변하면, 당신은 자신이 있는 곳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이 편안하든 불편하든, 당신은 자신이 있는 곳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당신은 삶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 삶이 움직이고 있다. 당신의 생각이나 의견, 당신의 편견이나 믿음은 이제 일련의 더 큰 사건, 당신에게 부과되는 더 큰 요구 사항, 진보를 위한 더 큰 기회 앞에서 하찮아지게 된다.

지혜는 자비심과 함께 온다. 왜냐하면 자비심은 지혜가 드러나는 조건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심을 가지라. 마음을 열라. 더 깊은 이해를 구하라.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으로, 또 더이상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일련의 기준에 따라 살려고 하는 것으로, 당신의 이전 생각을 강화하지 말라.

실제로 미래에는 부유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 온갖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 온갖 사회 체제에 속한 사람들, 온갖 개인적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점점 더 서로 얽히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인류의 극단적 성향을 중화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고, 더 공통되는 정체성을 만들어 낼 것이다. 비록 문화적 다양성이 개개인의 표현처럼 확실히 계속되겠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방식이든 선호하지 않는 방식이든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과 통합하게 될 것이다. 사람은 더 많아질 것이고, 자원은 더 적어질 것이며, 개인의 자유는 더 줄어들 것이고, 더 폭넓은 합의를 바탕으로 일이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이것은 단순히 다른 그룹보다 한 그룹에 더 봉사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공통으로 필요한 것들이 더 많아지고 훨씬 더 강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정신적으로, 어떤 경우에는 육체적으로 현재 있는 곳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당신은 큰 변화 앞에서 틀림없이 일어서거나 무너질 것이다. 많은 사람이 무너질 것이다. 그들은 큰 변화에 대처할 수 없을 것이고, 큰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며, 큰 변화와 하나가 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변화의 일부가 되지 못할 것이고, 변화를 방해하는 일부가 될 것이다. 변화는 틀림없이 일어난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가장 유익한 방식으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느냐이다. 당신이 인류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결과의 질을 결정할 수는 있다.

자비는 더 큰 문제에 대해 더 큰 반응을 선택하는 것이며, 새롭거나 힘든 경험의 결과로 자동적으로 느낄 수 있는 반응보다 더 큰 반응을 선택하는 것이다. 여기서 판단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관찰하는 법을 배우고, 마음을 고요히 하는 법을 배우고,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귀 기울이는 것처럼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고, 인내하는 법을 배우고, 자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생각을 삼가는 법을 배우고, 더 큰 깨달음을 기다리는 동안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 법을 배우고, 너무 지나치게 많이 자신을 규정하지 않고 사는 법을 배우고, 자신의 문제를 받아들여 건설적으로 그 문제들과 함께 일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들을 일단 너그러운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포함되고, 그들이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포함된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큰 공동체에 출현하는 세상의 일부가 될 채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기에는 비난과 증오가 일어나거나 아니면 자비와 지혜가 일어날 수 있다. 당신은 어떤 반응을 할지 계속 되풀이해서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또 선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두 반응 모두 당신 내면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당면한 변화를 말하고, 인류의 삶에 있는 이 큰 전환점의 도전을 말할 때, 슬그머니 물러나지 말고, 압도당하지도, 도피하거나 부정하려고도 하지 말라. 그러기보다는 여기서 제시하는 모든 것을 단지 위기 상황에 일어나 대처하라고 당신을 부르는 부름으로 여기라. 당신은 이것이 어떤 모습이 될지, 어떤 결과가 될지 모른다. 어쩌면 당신이 공헌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맞지 않을 수도 있고, 공헌이 필요한 상황이 오면 당신은 다른 것들을 공헌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당신은 더 큰 사람이 되어야 하고, 지혜와 이해를 받아들이는 더 큰 역량이 있어야 하며, 베푸는 더 큰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당신이 어떻게 이것들을 이룰 수 있는가? 먼저, 당신은 자기 삶의 상황을 출발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다음 특정 형태의 준비를 해야 하며, 그중 상당수는 매우 구체적이다. 그리고 현재 자신의 선호에 맞게 그 준비 형태를 창안하거나 변경하지 않아야 한다. 창안하거나 변경하면 당신은 자신을 향상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은 현재 자신의 관계는 물론 미래 여러 시점에서 자신의 관계를 재평가해야 한다. 그래서 당신이 하는 일이 그 당시 아무리 애매해 보일지라도, 그 관계가 그 일을 지원할 수 있는지 보아야 한다.

이때 많은 사람이 “삶에서 내 부름은 무엇인가? 내 영적 목적은 무엇인가?”라고 생각하며 묻는다. 종종 그들은 치유자나 사제가 되어 기쁨이나 영적 황홀경의 놀라운 경험을 하는 것과 같은 어떤 멋진 일을 생각한다. 어쩌면 자신이 아픈 사람들을 치유하거나 훌륭하게 되는 것, 아름다운 곳에서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 등 이런 온갖 것을 상상할지도 모른다. 당신은 이것이 동화라는 것을 인식하고, 거의 예외 없이 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삶에서 당신의 부름과 영적 목적을 찾으려면, 당신은 준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여기서 당신은 자신이 생각하거나 원하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에 기반을 두고 결정하는 법을 배운다. 여기서 당신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삶에 참여하게 된다. 여기서 당신은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되며, 정직해지고 단순해지고 솔직해진다. 당신의 영광은 이런 것에서 나오지, 환상을 실현하려는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것이 진정한 영적 삶을 사는 현실이다. 보상은 깊이 안에 스며 있지만, 영광과 황홀경이 자기 경험의 기반이 되기를 바라는 이들은 그 보상을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행동하는 사람이 있고, 꿈꾸는 사람이 있다. 행동하는 사람이 되라. 꿈은 이루지 못하면, 그저 삶의 낭비일 뿐이다. 그래서 꿈은 당신이 어느 정도 이루어야 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자신의 영적 부름이나 영적 목적에 대한 기대를 깨끗이 잊고, 온갖 이미지를 모두 지우고, 환상을 버려야 한다. 마음을 열고, 자비심을 갖고, 인내하고, 관찰하고, 행동할 준비를 하라. 행동이 진정으로 요구되는 순간을 기다리고, 당신이 행동하려고 하는 모든 성급한 동기를 억제하라. 배우는 일에, 또 잘못 배운 것을 버리는 일에 헌신하라. 또 당신이 내면에서 마주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든, 당신이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진실을 발견하는 데 헌신하라. 자비심에 깃든 이 헌신과 자비심에 필요한 모든 것을 통해, 당신은 성장해 나갈 수 있고, 세상의 움직임과 보조를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당신의 진정한 선물이 당신을 통해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자신에게서 진정한 이 선물을 끌어낼 수 없다. 대화나 영적 연습을 통해서도 끌어낼 수 없으며, 자신을 쥐어짜서도 끌어낼 수 없다. 당신은 적절한 마음 상태와 적절한 상황에 있어야 하고, 맞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이 선물은 밖으로 나올 것이고, 당신이 부인하거나 오인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나올 것이다. 그렇지만 당신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적절한 상황에서 적절한 마음 상태에 도달하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자비심이 필요하고, 내가 말한 모든 것이 필요하다.

그러니 인내심을 가지라. 당신은 중요한 어떤 것을 기르고 있으므로 서서히 성장한다. 빨리 자라는 것은 빨리 죽는다. 갑자기 일어나는 것은 다음 순간에 사라진다. 큰 성취는 큰 준비에서 태어난다. 당신이 “나는 이곳에서 삶의 진화를 지원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내 목적의 기반을 찾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필요한 마음 상태를 계발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고 자문하면, 나는 준비하고, 관찰하고, 정직하라고 말한다. 준비 방식이 당신에게 다가오면, 비록 그 준비에 저항하고 그 준비를 부정하려고 할지라도, 당신은 그 준비를 알 것이다. 그 준비는 당신에게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일이 될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준비는 그저 잠깐이면 될 거야.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는 않겠지. 확신이 들 때까지는 조금만 바칠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시작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올바른 준비라면, 당신이 바치기로 계획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고, 당신은 이 준비에 바치면서 자신이 더 많이 바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바치는 것이 여기서는 주안점이다.

당신은 “어떻게 하면 내가 당신이 말하는 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가?”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정직하고, 단순해지고, 인내하라. 준비하라. 당신을 위해 만들어진 준비를 받아들이라. 직접 준비를 창안하지 말라. 참여하라. 아무도 당신을 대신하여 이것을 할 수 없으니, 당신이 해야 한다.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자기 목적을 찾은 사람에게 공헌하라. 그러면 당신이 자기 길을 찾도록 그 사람이 도와줄 것이다. 당신이 자기 삶에 위대함이 있다고 느낀다면, 위대한 사람들에 대해 읽고 배우고, 가능하다면 그 사람들과 교류하라. 만약 큰 공동체 앎길을 알고 싶다면, 당신은 앎길을 공부하고, 앎길과 통합하고, 앎길을 완전히 이해하고 따라야 한다. 앎길을 잠깐 손대 보거나 가지고 놀아서는 안 되며, 자신에게 맞는지 시험 삼아 해서는 안 된다. 앎길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하면, 앎길은 당신에게 보상을 줄 것이다. 삶과 당신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은 그 관계를 받아들여야 하며, 가지고 놀거나 잠깐 시험해 보아서는 안 된다. 그 관계를 받아들여야 한다. 당신 마음과 당신의 관계, 당신 몸과 당신의 관계, 앎과 당신의 관계도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은 망설일 때가 아니다. 지금은 양가성을 가질 때가 아니다. 지금은 헌신할 때이고, 내적 결단이 필요한 때이고, 앞으로 나아갈 때이다. 당신이 해야 한다고 이미 알고 있는 것이 많다. 지금은 그것들을 해야 할 때이다. 그것이 당신의 출발점이다. 오늘 당신이 아는 것을 하라. 그러면 내일 어떤 것을 알 것이다. 내일 당신이 아는 것을 하라. 그러면 그다음 날 어떤 것을 알 것이다. 앎은 이렇게 회복된다.

당신이 무엇을 하든, 그것이 현명한 결정이든, 어리석은 결정이든, 당신이 고상하게 행동하든, 유익하지 않은 방식으로 행동하든, 인내하고 용서하고 자제하고 관찰하고 재평가하는 등 자비심을 낳는 이 모든 것으로 돌아가라. 다른 사람들을 비판적이거나 독선적인 자세로 바라보지 말고, 그들도 변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적응하려고 고군분투하고 있음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라. 그들 역시 자신의 실패와 성공 가능성을 받아들이려고 할 것이다. 당신은 자신이 고군분투하는 것을 많이 알면 알수록, 그들을 더 잘 이해할 것이고, 비난하거나 무시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것이다.

현명하고 자비로운 이들은 자신의 고통을 마주했고, 그 고통을 겪었다. 이제 그들은 세상의 고통을 마주할 수 있고, 그 해결책에 공헌할 수 있다. 그리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그들에게 좋은 생각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이 그 길을 여행했고, 해결책과 탈출구를 찾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