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received by
Marshall Vian Summers
on 6월 12, 2008

2008년 06월 12일
미국 콜로라도 보울더에서
마샬 비안 서머즈가
받다

지구가 위치한 이 지역 우주의 선진국들 사이에서는 당신이 알고 있는 가족단위가 여전히 많은 곳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지배계급에서는 항상 유지되고 있다. 행성이 원시사회에 가까울수록 가족단위는 당연히 자연적 양상을 띤다. 그러나 기술에 의존하고 유전학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선진국들 사이에서는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가족단위와 씨족단위가 점점 커져 더 큰 부족단위로 가는 것은 분명히 지적 생명체가 진화하는 방식이다. 어떤 외부 힘이 개입하거나 통제하지 않는다면, 진화는 이 방식을 따르게 된다.

매우 오랜 기간, 유전학과 유전자 제어에 역점을 두는 일은 대단히 널리 확산되었으며, 그 결과 이로운 일도 많았고 때로는 비극적인 일도 많았다. 어떤 특정 목적으로 양육된 이들에게는 유전자 제어가 분명히 비극적인 일이다. 조직이나 종족에 따라 달라지지만, 이런 일은 현실적인 문제와 윤리적인 문제를 모두 야기했다.

선진화된 기술사회에서 가끔은 가족단위가 피지배계급부터 지배계급까지 모두 유지되기도 하였지만, 일반적으로는 안정과 안보를 유지하기 위해 비참한 집단양육을 만들어내어 매우 높은 수준까지 시행하였다. 노동자계급, 군인계급, 기타 전문화된 특수계급 등이 집단양육의 대상이 되었으며, 다만 이것을 비윤리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여기는 국가들만이 집단양육을 하지 않고 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집단양육은 끔찍한 것이다. 물론 현재 인간도 건강과 복지를 증진한다는 미명 아래 유전자 조작을 실험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실험은 권력의 유혹을 보여주는 것이며, 인간의 자유와 창의성 안에 있는 본질과 잠재성을 심히 훼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구와 같은 행성들을 탐험하고 조종하는 일에 관여하는 종족들은 유전자적 양육에 의존한다. 그들이 양육하는 종족들은 특정 목적을 위해 양육되며, 가끔 모든 개체적 특성이 박탈되기도 한다. 심지어 서로 간에 아무런 자비조차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 종족들은 같은 종족끼리만 교배하며, 자신을 보존하려는 자연스러운 경향마저 제한받고 있다.

집단양육 문제는 획일성과 통제가 필요한 기술 대국들의 발전과 맞물려 일어난다. 특히 기술 대국들이 국외 기지를 가지고 있을 때, 더욱 심하다. 주민들 사이의 소요 사태는 항상 잠재된 문제이자 부단히 일어나는 문제이다. 그래서 많은 곳에서 집단양육에 역점을 두고 이 문제를 다루어 왔다.

그러나 집단양육에는 자체 위험 요소가 있다. 왜냐하면 절대적으로 보장할 만한 결과를 얻기란 지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지구가 위치한 이 지역 우주에서도 양육된 이들이 자신들이 봉사하기로 한 조직을 무너뜨리면서 자기 주인을 배반한 경우들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자신을 돌보는 설계가 되어 있지 않아 자신을 돌볼 수 없으므로, 한 번 소요 사태가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어 모두 제거되어야 했다.

유전자 조작은 불완전한 과학이다. 유전자 조작이 고도로 전문화된 수준까지 발전되었지만, 여전히 불완전한 과학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신이 창조한 것을 창조할 수 없으며, 신이 창조한 것을 완전하게 조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물체에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제어할 수 없는 다른 특질이 있다.

그래서 좀 더 윤리적인 종족들은 집단양육을 피해 왔다. 왜냐하면 집단양육은 비윤리적인 데다가 개인의 능력을 파괴하고, 또 그 최종 결과가 가끔 예측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대혼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윤리적인 선진국들은 집단양육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윤리가 없는 선진국이 많이 있으며, 그런 국가에서는 매우 특정한 유전자 설계에 따라 노동자계급들이 기능하도록 해놓았다. 이 노동자계급들은 정상적이고 자연적인 가족 형태를 유지하는 자신의 상관을 섬긴다. 하지만 여기에는 위험이 따른다. 왜냐하면 생명을 받은 존재들의 마음과 인식을 집단양육이라는 방법을 통해서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불화와 불충이 일어날 잠재성이 항상 내재하여 있다.

유전자 조작은 힘이지만, 위험한 힘이다. 유전자 조작이 지나치게 이용되어 사회 안녕에 해롭게 쓰인다면, 대단히 위험해진다. 이것이 기술력과 기술 통제를 받아들일 때 생기는 문제 중 하나며, 개인의 자유에 역점을 두지 않고 안정과 안보를 확립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유전자 조작을 아주 광범위하게 실시한 종족들은 심지어 지배계급마저도 죄수처럼 살게 되었다. 왜냐하면 지배계급은 자기들이 끊임없이 감시해야 하는 양육된 군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어, 통제받는 계급들이 어떤 변칙적인 것이나 다른 영향을 받으면 그들의 생명이나 안녕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단양육에 의존하고 유전학적으로 설계된 대다수 민중에 의존하는 국가는 개인의 자유라는 개념이나 그런 표현들, 즉 미술·음악이나 다른 창의적 표현들을 매우 위험한 것으로 간주한다. 왜냐하면 이런 자유의 개념이나 표현은 양육된 이들에게 관심이나 흥미 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개인의 자유나 오락을 아주 가볍게 표현한 것마저도 양육된 이들을 통제하는 지배계급에는 위험한 일로 보일 수 있다.

통제를 강하게 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더 취약해진다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절대적인 통제·보안 상태란 없다. 비록 국가와 사회의 안정·생존·안녕을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는 통제와 보안이 필요하지만, 너무 지나치면 그 자체에서 위험이 생긴다.

신은 개개인을 모두 창의적으로 표현하도록 창조하였다. 만약 유전적 조건이나 정치적 탄압, 사회에서 정한 신분으로 이런 창의적 표현력을 억제하려 한다면, 개개인들의 내면에서 근본적인 갈등이 일어나게 된다. 이때 그들이 자신의 유전자적 설계에 역행할 가능성이 항상 있으며, 사회에서 정한 신분에 반발하고,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정해 놓은 이들에게 반기를 들 가능성이 항상 있다.

매우 긴 기간 동안, 제대로 기능하는 계급제도를 만들어 보려고 많은 실험이 행해졌다. 경제 집단과 같은 매우 작은 그룹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러나 대규모 사회에서는 성공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만약 유전학적으로 역할이 서로 다른 무리가 한데 섞이면, 그 결과는 예측할 수 없게 된다. 대규모 사회에서 역할이 다른 무리를 완벽하게 분리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들은 자신의 유전자적 설계에 따른 예측과 계산을 벗어나서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를 자극할 수 있다.

자유국들이 집단양육이나 유전자적 설계에 의존하는 큰 국가들과 접촉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때문이다. 똑같은 이유로 큰 국가들도 자유국들과 접촉하기를 꺼린다. 자유국에서 행해지는 개인적 표현이나 개인의 창의성 표출이 그들의 대규모 문명사회에 구축된 사회질서에 위협으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세속적이 되어 버린 국가에서 개인의 자유는 확실히 문제가 된다. 그런 국가들은 개인의 영적 특질을 이해할 수도 없고, 개개인의 내면에 있는 깊은 영적 지성인 앎, 이 앎의 힘과 현존을 이해할 수도 없다. 국가나 문명사회가 완전히 세속적이 되면, 개개인의 내면에 있는 가장 큰 힘과 가능성을 자각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개인의 내면에 있는 깊은 영적 실체는 비록 그 국가들이 유전공학이나 사회기능을 통해 개인의 역할을 통제하려고 할지라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이것이 대규모 선진 기술사회가 겪는 큰 문제 중 하나이다. 또한 사회의 규모나 제국의 규모를 한없이 키우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매우 큰 제국은 본질적으로 불안정하여, 외곽 지역이든 중심부든 통제 문제로 붕괴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당신이 개개인들을 기계처럼 살아가도록 사회를 만들었다면, 당신도 기계처럼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기계는 정해진 어떤 범위 안에서만 기능한다. 그 범위 밖으로 벗어나면, 기계의 특성은 전혀 예상할 수 없게 된다. 생물체도 항상 이와 같을 것이다.

지구가 위치한 이 지역 우주에서 인류가 만나게 될 종족들 가운데, 집단양육이 있는 것은 분명하며, 특히 지역 무역을 하면서 불법 무역까지 하는 경제 집단은 더욱 분명하다. 큰 사회에서는 집단양육을 보통 최소한으로 줄여 유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세월이 흐르면서 조작하는 것이 너무 어려운 것으로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국가가 무엇을 하느냐, 또 윤리를 얼마나 중요시하느냐에 따라 그 정도는 달라진다.

만약 당신이 이 지역에서 무역하는 국가들과 접촉하게 된다면, 집단양육의 증거를 볼 것이다.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된 집단양육을 볼 것이며, 일반 대중에게 유전자 조작이 널리 행해진 것을 볼 것이다. 그들의 외모나 행동에는 매우 획일적인 경향이 있을 것이다.

유전자 조작은 인류가 직면해야 할 위험이다. 왜냐하면 이런 종류의 유전자 조작에는 권력의 유혹이 생기기 때문이다. 유전자 조작이 처음에는 좋은 목적으로 실제 도움이 되는 일에 쓰이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거기에는 권력의 유혹이 있기 마련이다.

유전자 조작과 같은 발상이 지금 인간가족에게서 발견되고 있다. 이런 정보는 대부분 지금 지구를 방문하여 개입하고 있는 종족들이 전해 주었다. 인류가 이 기술을 개발하여 이용하는 것은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개인의 자유가 비교적 많은 국가를 경제 집단들이 다스리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인간이 더욱 획일화되어 그들 집단을 더욱 닮아가는 것이야말로 그들에게 이익이 된다.

큰 공동체의 가족단위에서 개인의 자유는 장려되거나 아니면 억제된다. 기술에 기반을 둔 대규모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대체로 억제되며, 어떤 곳에서는 있다는 것조차 모른다. 그 사회에서도 자신의 가족을 돌보고 가족의 이익에 봉사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 점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들도 유전이나 가족신분에 따라 자신의 재능에 맞게 자신에게 지정된 어떤 역할을 해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 점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큰 공동체에서 가족을 중요시하는 것은 국가를 중요시하는 것과 상충한다는 점에서 문제이다. 가족은 씨족이 되고, 씨족은 큰 무리가 되며, 이 큰 무리끼리는 서로 가족적 연대감이 없어 서로 이해관계가 상충한다. 그래서 대규모 기술사회에서 가족의 중요성이 많이 축소된다.

그러므로 그런 사회에서는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자녀를 낳을 수 있다 하더라도, 자녀의 전체적 양육은 일반적으로 철저하게 사회에서 정한다. 그래서 부모에 대한 효심이나 가족에 대한 충성심은 크게 약화된다. 통제 사회에서는 분명히 이렇게 된다. 그 밖의 다른 많은 국가에서는 가족에 책임을 다하고 헌신하는 것에 관하여 어느 정도 유연성이 있다. 이 모든 것이 해당 국가의 체제나 주안점, 윤리적 기반에 따라 달라진다.

집단양육의 문제는 군대를 조직하는 데서도 나타난다. 여기서 먼저, 군인을 교육하고 통제하려면 상당한 기반시설이 필요하므로, 집단양육은 엄청나게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만약 군대가 집단양육이라는 수단을 통해 조직된다면, 군인들이 자기 주인에게 철저히 충성할 수도 있겠지만, 창의력과 직관을 이용하는 적과 맞설 때는 아무 쓸모가 없을 것이다. 또한 정신 환경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적에게도 아무 쓸모가 없을 것이다. 유전학적으로 양육된 이들을 그의 주인에게 충성하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정신 환경의 영향력을 받지 않도록 유전학적으로 양육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집단양육을 통해 조직된 군대가 효과적이지 못한 것으로 입증되었다. 그 군대는 창의성이 없고, 다른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며, 정신 환경에서 쉽게 설득당할 수 있다. 그래서 이처럼 조직된 군대에 강력하게 대응하는 방안이 마련되어, 그 군대에 대항할 수 있고, 혼란과 분열을 일으킬 수 있으며, 그 군대의 적응력 부족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군사력 확장이 제한받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큰 국가를 만들어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으로 입증되었다. 무역이 많이 행해지는 환경에서는 군사적 침략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국가들이 군대를 보유하고는 있지만, 방위군으로서 기능하는 것에 가깝다. 오직 전 지역이 외부 침략 세력에 위협받을 때만, 훨씬 더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해 이 방위군들이 결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없는 환경에서 대규모 군대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때 정신 환경에서의 무기와 힘을 훨씬 더 믿게 될 것이고, 방어하는 일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믿게 될 것이다.

큰 공동체에서 사회구조는 매우 획일화될 수도 있고 매우 복잡할 수도 있다. 유전자적 양육을 하는 국가에서는 아주 뚜렷이 구분되는 계급들이 있으며, 이 계급들은 특정 기능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계급들은 다른 사회구조의 지도와 통솔하에 공존할 수 있으며, 이때 지도하는 사회구조는 가족단위를 통해 자연스럽게 진화한 것일 수도 있고 집단양육을 통해 진화한 것일 수도 있다.

지구 전역에서 인류가 체험하는 가족단위는 대부분의 대규모 기술사회에서 실제로 상당히 희귀한 것이다. 그 사회에서는 주로 아이들을 부모에게서 떼어내어 큰 무리 안에서 집단으로 기른다. 그리하여 국가관을 주입하고 아이들의 재능이나 사회적 기능과 신분에 따라 개개인들을 성장시킨다.

오직 자유사회에서만 지구와 매우 흡사한 사회형태를 볼 수 있으며, 그곳에서는 개인이 국가 편의에 맞는 큰 사회형태 안에 단순히 부품처럼 끼워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처럼 자신의 특별한 재능과 능력에 따라 성장한다. 자유사회에서는 개인의 재능과 능력을 성장 초기에 파악하여 개인들을 재능과 성향에 따라 자연스럽게 키운다. 이렇게 하여 개인들은 자신의 가장 큰 능력들을 이끌어 내고, 내면의 앎을 기른다. 그래서 그들 스스로 자신의 장점과 재능을 아는 것은 물론 이 장점과 재능을 건설적으로 표현하고 싶어 하는 자신의 자연스러운 소망도 알게 된다. 그러나 이런 교육은 특정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개인에게 깊이 초점이 맞추어진다. 사회에서 미리 정해 놓은 특정 역할 말고는 개인의 역량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대규모 기술사회에서는 이런 교육을 거의 볼 수 없다.

물론, 대규모 기술사회에서는 특정 업무를 위한 훈련이 있으며, 아이들을 부모에게서 데려다가 특정 사회기능에 맞게 틀이 완전히 형성되도록 특정 교육을 한다. 자유로운 사회, 개인을 중시하고 개인의 잠재성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이런 교육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유사회가 훨씬 더 소규모인 이유 중 하나이다. 자유사회에서는 큰 기반시설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들에게 고압적으로 요구하는 일이 없다. 또한 매우 엄격하게 순종하는 것이 필요한 외국 기지가 없다. 이런 기지를 두게 되면, 큰 공동체에 존재하는 외국의 영향력과 설득력에 그 사회 구성원들이 노출될 것이다. 자유국가는 훨씬 더 소규모이고 포괄적인 경향이 있다. 자유국가는 행성 밖의 영향력에서, 또 자기들과 다른 종족들과 관계를 맺을 때 항상 존재하는 많은 힘의 유혹에서 자신의 이점을 보호해야 한다.

자유국가는 개인성장에 역점을 두므로 매우 높은 수준의 창의성을 계발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자유사회에서는 과학과 기술, 윤리와 영성이 놀랄 만치 크게 진보할 수 있다. 이 진보가 사회에 주는 혜택은 엄청나며, 대규모 기술사회에는 없는 어떤 이점들을 누린다. 하지만 이런 이점을 누리면, 감시와 관심을 받게 되고, 불가피하게 설득을 받게 된다. 그래서 작은 자유국가는 다시 지극히 신중히 지내야 한다. 왜냐하면 작은 자유국가는 큰 국가에 없는 이점, 즉 사회구조가 다른 국가에서 볼 때 큰 가치와 이득이 있어 보이는 이점을 계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다시 큰 공동체에서 부와 힘을 가질 때 생기는 문제가 된다. 그래서 이것은 다시 현자가 은밀하게 지내야 하는 이유가 되며, 현명한 사회 역시 은밀하게 지내면서 지극히 신중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여기서 당신은 큰 공동체가 인간의 이상과는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간은 우주와 자유스럽게 공개적으로 자신의 지혜를 나누고, 가는 곳마다 자신을 표현하며, 가는 곳마다 자신의 재능을 공유하고, 자신의 재주·능력·기량 등을 널리 알리고 싶어 한다. 인간이 큰 공동체 현실과 맞지 않게 이런 열의와 야망을 여전히 품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매우 높은 수준의 신중함과 분별력을 계발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인류가 우주에서 자유국가로 진화할 수 있으려면, 지극히 신중하게 처신해야 할 것이고, 인류의 재능과 기량을 가능한 한 큰 공동체 감시망에 걸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인류가 기술에서 진보하거나 사회구조나 사회기능, 심지어 예술에서 진보할 것 같으면, 대부분의 이런 진보가 외국 세력들의 감시망에 걸리지 않게 숨겨진 채로 있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유국은 비자유국에 항상 위협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자유국에서 하는 표현은 자유가 시행되지 않아 미지의 것인 큰 국가에 항상 위험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인류는 이 현실을 비켜갈 수 없으며, 우주를 인류의 관점에 맞추도록 설득할 수 없다. 만약 인류가 그런 시도를 한다면, 자유와 자결권의 상실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다시 현자는 현명한 채로 있으려면 숨어 지내야 하며, 자유국은 큰 공동체에서 계속 자유롭게 살아가려면 지극히 조심하고 깊이 분별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인간가족이 보편적으로 가진 태도·관점·야망과는 매우 다르다. 지구에서 인간가족 사이에 이루어진 자유권 행사나 자유의 표현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유익하다. 하지만 지구에서조차 자유가 아예 없거나 지극히 제한된 국가에서 자유를 얼마나 도전이나 위험으로 간주하는지 볼 수 있다. 그런 국가에서는 개인의 자유 표현이 유익하든 안 하든, 그 표현을 두려워한다. 이것은 지구 안에서조차 볼 수 있는 문제며, 개인에게 얼마나 많은 자유를 부여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큰 공동체에서 개인의 자유는 희귀하며, 많은 곳에서 미지의 것이다.

지금 인류는 변화의 큰 물결에 직면해 있으니, 지구에서 개인의 자유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축소될 것이다. 자원의 한계, 국가 부의 감소, 계속 커지는 빈곤 문제 등에 직면하여 부득이 개인의 자유는 제법 크게 축소될 것이다. 인류는 사회적 양심과 책임을 더욱 깊이 느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인류가 한 종족으로써 진화해야 할 부분이자, 자신을 위해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인지, 또 큰 공동체와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지에 대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인류의 동행자들은 인간가족이 자유를 보전하고 깊은 앎을 자각하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려 한다. 동행자들은 그들 지역 우주에 다른 자유국들이 있기를 바란다. 그 이유는 인류를 사랑해서라기보다는 그들 자신의 안정과 안보를 위해서이다. 그들은 우주의 자유 신장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는다. 또한 그들 부근에 다른 자유사회가 있는 것이 그들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게다가 그들은 인류가 매우 훌륭한 종족, 즉 개인적 능력이 사회에 혜택을 주는 커다란 이점을 가진 종족으로 진화할 잠재성과 가치가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잠재성을 실현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인류의 동행자가 지구에 일련의 상황보고를 보냈다. 그래서 그들은 인류가 큰 공동체와 만날 때 일반적으로 겪을 수 있는 위험을 대비하도록 돕고, 개인의 재능과 능력을 개발하도록 강조하며, 모든 자유 종족의 바탕에 있는 영적 앎을 기르도록 역설한다. 인류에게는 큰 공동체에서 자유와 자결권을 가진 종족으로 진화할 수 있는 모든 훌륭한 자질이 있다. 하지만 필요한 것들이 대단히 많으며, 그중에 교육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변화의 큰 물결에서 만날 어려움들을 고려해보면, 환경 악화나 자원 감소, 식량생산 감소나 필수자원 분배의 어려움에서 기인한 문제들, 유행병의 위험이나 전쟁과 충돌의 위협 등, 이 모든 것이 인류가 현재 직면하고 있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점점 더 많이 직면하게 될 큰 위험들이 될 것이다. 게다가 외계에서 경제 집단들이나 다른 무리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개입하고 있는 것은 인류의 현재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하고 있는 위험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유국들이 와서 지구를 지켜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자유국들은 신중한 태도를 취하며,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군사력도 없다. 우주에서 자유권은 인류 스스로 얻어야 한다. 인간 가족이 자유권을 지키겠다고 의지를 품고 그 일에 헌신했을 때, 인류가 자유 종족으로써 자리잡을 것이다. 만약 인류가 외국 세력의 비호 아래서 살아가야 한다면, 그 외국 세력은 인간의 의식과 지구 정부들을 상당히 깊이 통제해야 할 것이다. 어떤 자유국도 이렇게 할 수 있는 기반이 없으며, 또 이것이 결국 인류의 이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류는 결국 성장해야 한다. 또 성숙해져야 하고, 강해지고 신중해져야 한다. 이것이 지적 생명체가 큰 공동체에 진입하는 데 도전이자 어려움이다. 이것이 바로 인류 앞에 지금 놓인 도전이며, 위험스러운 도전이지만, 가장 큰 기회를 가져다주는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