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shall Vian Summers
on 1월 31, 1997
1997년 01월 31일
미국 콜로라도 보울더에서
마샬 비안 서머즈가
받다
큰 공동체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지구를 방문하려고 오는 이들 대부분에게 더 구체적으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명확하게 당신에게 이해시키려면, 우리가 이 주제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큰 공동체에서, 기술이 발전하여 제국을 확장한 사회들은 항상 그들 세계의 천연자원을 과도하게 사용하므로, 자국의 국경 너머에서 자원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무역과 상업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같은 자원을 구하는 다른 세계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환경에 얽히게 된다. 이로 인해 무역과 상업에 참여한 국가들과 종족들 사이에 매우 복잡하게 얽힌 관계와 동맹 등이 전반적으로 생겨났다.
자원의 필요성과 경쟁 환경의 특성이 이 시기에 지구를 방문하는 대부분의 집단에게 있는 동기를 아주 잘 설명해 준다. 그들은 주로 지구에서 생물 자원과 광물 자원, 유전자원을 획득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필요성에 이끌려 움직인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강조해야 한다. 그들은 지구에 있는 종교와 연결되어 있어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니며, 고대 예언을 실현하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또 인류를 영적으로 향상시키려고 이곳에 온 것도 아니다. 영적 야망이나 종교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충족시킨다면, 그들은 영적 야망이나 종교를 이용하겠지만, 이것은 그들이 여기에 온 목적이 아니다.
여기서 당신은 지구가 풍부한 생물 저장고로서 엄청난 자원 수용력이 있는 세계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바깥에 있는 이들의 흥미를 유발한다. 인간이 자연환경 안에서 당연시하는 것, 여기서 훼손하고 방치하는 것이 사실은, 그것을 아는 다른 이들에게는 매우 귀한 보물이다.
여기서 다시 정글에 사는 고대 주민들을 비유로 들어보면, 그들은 자신들이 짐작도 할 수 없는 목적 때문에 발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이 발견된 것은 다른 이들이 자원을 찾고 있고, 부를 찾고 있으며, 이들에게 필요한 것들이나 이들이 사는 경쟁적 환경에 휘둘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 역사에서, 얼마나 자주 이런 일이 일어났고, 그 결과로 얼마나 자주 원주민들이 죽임을 당했거나 영원히 바뀌었는가?
큰 공동체에서, 모든 국가가 무역을 하는 것은 아니며, 모든 국가가 자국의 국경을 넘어 관계를 맺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자급자족하려고 하고, 큰 공동체의 복잡한 문제에 연루되지 않으려는 작은 그룹들과 소수민족 거주지가 있다. 그들은 숨어 지내고자 하며, 자국 행성의 자원이 발견되지 않게 하고자 한다. 그들은 자원 탐사자들을 환영하지 않으며, 큰 공동체에 말려들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것은 자급자족 능력, 상업‧무역‧경쟁의 영역 밖에 남아 있는 능력으로 하나의 특권이다. 이것은 얻기도 어렵고 지키기도 어려운 권리이다. 특히 자국이 속한 구역이나 지역에 훌륭한 자산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 더욱더 그렇다.
지구의 경우, 이 자치권을 얻기에는 너무 늦었다. 비록 미래에는 자치권을 확보할 수 있다 하더라도 지금은 늦었다. 지구 자원은 이미 알려졌고, 수 세기 동안 이용되어 왔다. 이제 인류는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종족이 되었고, 그 자체로 큰 공동체 일에 잠재적 참여자로서 잠재적 위협이 되고 있으므로, 이 자원을 이용해 온 이들은 이제 인류에게 영향을 주려고, 또 인류의 약점을 이용하고 강점을 활용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여기에, 다른 이들은 단지 인류의 행동과 성향을 관찰하기 위해 지구를 방문했다. 그리고 우리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인류에게는 동행자도 있다. 이들은 지구에서 앎이 출현하는 것을 지지하고, 지구에서 큰 공동체 영성이 발전하는 것을 지지하며, 부족 간의 갈등과 부족의 정체성을 뛰어넘어 인류가 향상하도록 돕고자 한다. 그래서 인류가 책임감 있고 협동하는 지구 종족이 되게 하고, 자원을 보존하고 자결권을 구축할 수 있게 한다.
다시 말하지만 큰 공동체는 우선 물질 환경이고, 당신이 아는 물리 법칙에 지배받는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모든 국가의 종족들은 자신들의 생존에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두고 씨름해야 한다. 그리고 당신이 다른 종족들과 상업‧무역에 참여할 때, 이것은 매우 복잡해진다.
만약 지구가 풍요롭고 가치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 이것은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왜냐하면 다른 이들이 그것을 차지하려고 당신과 싸울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문명국들 사이에서 노골적인 정복은 저지되지만, 같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미묘한 수단들이 있다. 여기에는 정신 환경에서의 기량과 집중이 있고, 세계들 사이에 있는 외교 문제의 신중한 협약이 있다.
물론 인류는 이런 기량들이 하나도 없다. 인류는 정신 환경에서 필요한 역량을 개발하지 못했다. 인류는 당면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적절한 집단심의 경험을 쌓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다른 종족들을 상대하는 외교 수완도 없다.
그런데도 인류는 엄청나게 풍요로운 세계에 살고 있다. 인류는 마치 자신들도 모르는 엄청난 광물 자원이 있는 땅에서 사는, 정글 깊숙이 있는 마을의 원주민과 같다. 이 광물 자원이 외부 세계를 그곳으로 끌어들인다. 그러한 일이 지금 지구에 있는 인류에게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다시 말하지만, 인류를 방문하는 자들은 매우 평범한 이유로 이곳에 왔다는 것을 깨달으라. 그들은 신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다. 그들은 단순히 자신들이 필요한 것에 따라 움직인다. 그들은 인류의 나약함과 무능함을 알고, 환경 악화를 알며, 자신들이 원하는 자원을 보존하고 인류의 기술과 적응력을 이용하기 위해 이곳에 정착하려고 한다.
인류가 큰 공동체에 성공적으로 출현할 수 있으려면, 무역과 상업 문제를 다루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이고, 참여자 입장에서 보면 뛰어난 기량과 분별력이 필요한 문제이다.
여기서 인류는 자신의 태양계를 넘어서려고 시도하면 저지당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가 탐험하고자 하는 지역에는 이미 소유자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텅 빈 광활한 우주에 인류만 있어 보인 것과는 달리, 다른 종족들의 소유물과 이익과 우선순위에 인류가 맞닥뜨리게 된다는 것을 인류는 알게 될 것이다.
이 태양계 내에도 큰 공동체 기지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주로 지구의 상황을 관찰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주목할 만한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큰 공동체 안에는 무역 국가들 사이에 일반적으로 준수하고 존중하는 어떤 윤리와 기준이 있다. 이러한 윤리 중 하나는 한 종족이 자신의 태양계 안에 있는 모든 행성에 대해 기본 권리를 가지며, 어떤 외부 종족도 무력으로 이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이러한 윤리를 침해하는 것은 엄청난 파문을 몰고 오며, 실제로 무역과 상업의 흐름을 교란하여 다툼과 충돌을 초래할 수 있다.
큰 공동체에는 한 종족이 자신의 자연환경을 파괴하면, 다른 종족들이 와서 그 종족을 추방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는 윤리도 있다. 비록 이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조항이고 거의 실행되지 않지만, 무역과 상업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종족 사이에서 여전히 일반적으로 유지되는 윤리이다.
그런데 큰 공동체는 매우 광활하며, 무역과 상업에 참여하는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무역 상대가 한 국가나 두세 국가뿐이다. 모든 국가가 다른 모든 국가를 상대로 무역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무역하기에는 너무 방대하다. 그래서 우리가 큰 공동체 무역‧상업의 윤리를 말할 때, 참여하는 모든 국가가 지지해서가 아니라, 실질적인 이유로 강조되는 것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여기에서 이것을 언급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특히 지구가 위치한 지역의 종족들에게 알려진, 행동을 통제하는 어떤 기준이 있다는 것을 당신이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인류는 지구의 자연환경을 빠르게 파괴하는 과정에 있으므로, 이것은 다른 이들에게 관여하게 만드는 동기를 주며, 자기 잇속을 차리는 행동을 취하면서 이곳에서 자신의 이익을 보존하려고 인류의 성향을 상쇄하고 싶은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큰 공동체 무역과 상업에서는, 교역 국가들 사이에서 군사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규정하는 윤리가 있다. 이것을 어기면, 혼란이 일어나고, 관련 국가들은 매우 곤란해지고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리고 많은 국가가 정신 환경에 숙련되어 있으므로, 이점을 얻는 다른 방법들을 찾았으며, 그래서 이곳 지구에서 아주 흔히 보이는 물리력 사용은 보통 야만적이고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것은 우리가 앞서 언급한 매우 중요한 지점으로 우리를 데려가지만, 여기에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가 제시한 것을 고려해볼 때, 일반적으로 무역과 상업에 참여하는 국가들이 영적으로 진보한 문명을 대표하지 않음을 당신이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보겠다.
큰 공동체에서 앎을 실행하는 능력은 훌륭한 기량과 자산으로 인정받는다. 그래서 이러한 기량을 지닌 이들에게 접근하여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들을 고용하려는 시도가 일반적으로 있다. 그러므로 현자들은 그들의 능력과 그들 사회의 온전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숨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진보한 집단과 국가들은 거의 은밀한 방식으로만 무역에 참여하며, 큰 공동체 환경에서 격리를 유지하려고 큰 비용을 치르고 어려움을 받아들인다. 기량과 뛰어난 솜씨를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단지 조사와 개입을 자초할 뿐임을 그들은 모든 곳에서 알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큰 공동체 앎길을 배우고 큰 공동체 자체를 준비하는 데 매우 기본적인 개념을 얻는다. 이 개념은, 현자들은 숨어 지낸다는 것이다. 현자가 계속 현명하게 남아 있으려면 숨어 지내야 한다. 만약 그들이 숨어 지내지 않으면, 그들은 이용당하거나 곤란한 일을 당한다.
그러므로 자원 탐사나 상업이나 자산 획득에 관여하는 국가들은 영적으로 진보한 국가들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앎으로 강한 이들이 아니다. 왜냐하면 영적 지성인 앎은 앎에 결속된 이들이나 앎에 가까이 있는 이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조장하거나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멀리서 인류를 지켜보는 인류의 동행자를 제외하면, 지금 지구에 관여하는 이들은 우리가 말하는 영적으로 진보한 종족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은 이해해야 한다. 이것에 대해 대단히 많은 혼동이 있고, 이 혼동은 바로잡지 않으면,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현자들은 숨어 지낸다는 이 개념을 숙고해보라. 이 개념은 지구에서도 사실이 아닌가? 강하고 성스럽게 여겨지는 이들인 가장 현명한 교사들은 은둔 생활을 하며, 드문 상황을 제외하고는 많은 사람이 쉽게 만날 수 없다는 것을 당신은 알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드문 상황에서도, 이런 개인들이 지닌 기량과 능력은 그들에게 큰 어려움을 초래하고, 많은 감시와 개입을 초래한다. 이 감시와 개입은 다루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지구에서도, 현자들은 숨어 지낸다. 지구 안에서도 가장 위대한 교사들은 찾기가 어렵다. 비록 그들은 글의 형태로 그들의 작품을 출판할 수 있지만, 자신의 가장 큰 재능과 특별한 능력은 그들을 찾기 위해 공을 들이고 큰 앎길을 배우고 학습하는 데 헌신한 학생들, 그런 진지한 학생들을 위해 남겨둔다.
지성을 자원으로 인식하고, 지성을 얻으려 하고 높이 평가하는 큰 공동체에서는 이것이 더욱더 사실이다. 그러므로 앎길에서 현명하고 강한 이들은 큰 공동체에서 은신처를 찾으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사회를 외부와 거리를 두려고 하고, 그들 정신의 본래 상태를 보호하고 보존하려고 하며, 그들이 창조하고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공을 들인 정신 환경을 방해하는 외부 개입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어벽을 쌓으려고 한다.
당신은 지구 안에서도 판매원과 성자 사이의 차이와 같은 많은 예를 떠올릴 수 있다. 어느 쪽이 공개적 입장을 강하게 취하고, 어느 쪽이 뒤로 물러나 숨어 지내는가?
그러므로 지구를 방문하는 이들이 영적으로 진보했다고 생각함으로써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지 말라. 그들은 정신 환경에서 쓰는 기량을 지니고 있고, 말하지 않고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만나는 이들에게 영향을 주는 탁월한 기술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그들이 영적으로 진보했거나, 앎 자체의 안내를 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이해이다. 여기서 당신은 방문자들의 강점과 약점을 모두 알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서 인류에게 이미 있는 강점을 더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류는 비록 부족 간의 충돌, 자기 집착, 파괴적 성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 안에서 풍부한 영적 유산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큰 공동체 안에서보다 지구 안에서, 앎은 훨씬 더 광범위하게 살아 유지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은 기술 진보나 정신 환경의 기량을 영적 자각‧이해‧역량과 구별해야 한다.
앎의 기량을 개발한 이들은 자신들의 기량을 보존하려고 할 것이고, 그들이 기량을 기르고 적절히 표현하는 것을 막고 개입하려는 그들 주변의 모든 힘을 알아차리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만약 당신이 큰 역량을 지닌 사람으로, 알 수 있고, 다가올 사건을 내다볼 수 있고, 관계를 분별할 수 있고, 정신 환경에서 능력이 있다면, 다른 이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당신을 찾아내려 하지 않겠는가? 만약 당신이 이런 기량을 지녔다는 것이 알려지면, 누구나 당신을 찾지 않겠는가?
누구나 문제가 생기면 당신이 도와주기를 원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다른 이들에게 공헌하고, 자신의 선물을 주고 싶을지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당신은 자신의 선물을 어디에는 주고 어디에는 주지 않아야 하는지, 누가 진정한 수령자이고 누가 단지 자기 목적을 위해 당신을 이용하고자 하는지 분별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큰 공동체에서는 이 교육이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정신 환경에서 쓰는 기술이 있고, 다른 이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당신을 이용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관여하면서 당신에게 초래할 자유의 상실, 능력의 상실, 궁극적인 붕괴 가능성에 비하면, 당신이 그들에게서 받을 수 있는 보상은 거의 없다.
지금 세상에는 대단히 민감한 사람들, 재미로 했든 이익을 위해서 했든, 자신의 염력을 연마한 이들은 이 기술을 알리려고 했으며, 자신을 위험에 빠뜨렸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을 어떤 위험에 빠뜨리는지 알지 못한다.
이것이 지혜 없이 힘을 가지려는 시도이다. 지혜는 항상 베푸는 자의 선물을 보호하고, 그 선물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는 곳에서 베풀어지도록 인도하려고 한다.
지금 지구에서, 큰 공동체 세력들은 특히 큰 염력이 있는 이들, 이 능력을 공개적으로 알리고 이용할 수 있게 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다. 당신은 왜 사람들이 아주 많은 곳에서, 아주 많은 메시지를 받고 있는지, 그리고 왜 사람들이 받는 메시지들 사이에 그런 혼동과 갈등이 있는지 의아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이 메시지들은 어디에서 오는가?” 하고 의아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이제 이것에 관해 이야기하겠다.
아직까지는 세상 사람들에게 정신 환경과 영적 현실을 구분할 수 있는 기술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곳에서 수준을 상당히 많이 혼동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직관적이고 염력 체험을 하면, 이러한 것이 영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영적 자각이나 영적 기반이 전혀 없는 이들도 정신 환경에서 탁월한 기술을 발휘하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이들의 생각을 읽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다른 이들이 생각하도록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사실은 큰 공동체에서 온 이들과 접촉하고서, 영적 접촉을 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지금 세상에 많다. 지구 방문자들이 인간과 접촉하고 영향력을 얻기 위해 지금 지구에 있는 영적 미신과 영적 심상을 활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실제로, 지금 지구에 온 방문자들 사이에서는 영적으로 민감한 이들과 정신적으로 민감한 이들에게 접근하여 그들에게 영향을 끼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다. 여기에서 주안점은 그들에게 메시지의 원천과 동일한 입장을 취하게 하고, 그들을 달래고 순종적인 수용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왜냐하면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의 개인 의지를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결권을 잃을 것이고, 판별력과 분별력을 잃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제공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에 끊임없이 마음을 열도록 부추김을 받을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에게 제공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분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온통 마음을 쏟겠지만, 동시에 노예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정신 환경의 미묘한 조종이다.
영적 조언을 받는 사람이 모두 큰 공동체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혼동하지는 말라. 왜냐하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류를 깨우치고, 인류를 인도하고, 인류를 향상하기 위해 창조주의 세력들 또한 많은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당신이 한 걸음 물러서서 전체 그림을 보면, 이 두 활동이 모두 진행되고 있고, 많은 혼동이 있다는 것을 당신이 보게 될 것이다.
그러니 당신은 이것을 어떻게 구별하는가?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글쎄, 어느 것이 진정한 안내이고, 어느 것이 속임수인가?”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뭐라고 하겠는가? 이 질문에 답하고 스스로 해결하기 위한 핵심 문제와 핵심 요소는 바로 앎의 회복과 관련되어 있다.
보고, 알고, 분별하고, 행동하는 개인의 능력을 보강하는 영적 가르침은 어떤 것이든 참된 가르침이고 참된 조언이다. 묵종하게 하고, 순종하게 하고, 무분별하게 수용하게 하고, 자결권을 포기하게 하고, 묵종하게 하여 그들의 관점에 완전히 복종하게 되도록 사람들을 부추기는 영적 가르침은 어떤 것이든, 이런 조종으로 사람들은 고통받고 있다. 영성을 강조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앎은 그들에게서 멀어진다. 그들은 자신이 아는 것과 가장 깊이 느끼는 것에서 분리되도록 부추김을 받는다.
당신은 오늘날 세상에서 이 둘의 경향이 모두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이 둘을 구별할 수 있으려면, 많은 주의와 분별력이 필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용되는 언어가 매우 비슷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이상, 똑같은 이상을 말하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가르침의 전체적 주안점이 다르다.
우리가 말했듯이, 지금 지구에 있고 이곳에서 지배권을 얻으려고 하는 큰 공동체 세력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권위를 쥐고 있는 두 영역, 즉 정부 기관과 종교 기관을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 이곳이 인간사에서 두 개의 거대한 권력 중심이므로, 대부분의 관심이 여기에 집중될 것이다.
그렇지만 특별하고 더 예민한 감수성을 보이는 이들도 누구나 큰 공동체에서 온 이들의 탐구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 예민한 감수성과 뛰어난 통찰력은 지구 방문자들이 찾고 있는 것임을 기억하라.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여기서 정착하기 위해 이런 타고난 직관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지구에 직관적인 연결점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생명체와 자연력에 직관적인 연결점이 없다. 그들은 지구의 자연력에 연결되지 않았으므로, 이러한 능력이 필요하고, 어디에서든 그들이 찾을 수 있는 이들에게서 이러한 능력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개방적이고 가장 신중하지 못한 사람들이 이와 같은 개입에 가장 취약하다.
앎길을 배울 때, 사람들은 예민한 감수성과 집중하는 능력을 기르도록 격려를 받지만, 동시에 매우 분별하도록 준비되고, 자기 내면에도 있고 그들에게 영향을 주는 눈앞의 환경 안에도 있는 큰 힘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도록 준비되며, 어떻게 이런 결과들이 초래되는지 이해하는 법을 배우도록 준비된다. 그들은 세상에서 관계를 맺고 상호 작용을 하는 데 매우 냉철하게 접근하도록 격려받는다.
이것은 일부 영성 집단에서 장려하는 멋진 낭만적 이상과는 매우 다르며, 세상에서 자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에 도취되거나, 오래전에 확립된 엄격한 이념에 매료된 이들과는 매우 다르다.
앎을 따르는 사람은 명확하게 보고 아는 법을 배워야 하고, 자신의 마음을 열어야 할 곳과 열지 말아야 할 곳, 선물을 주어야 할 곳과 주지 말아야 할 곳을 분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지구 자체 내에도 있고 지금 지구가 출현하고 있는 큰 공동체 내에도 있는, 이로운 세력과 이롭지 않은 세력인 큰 세력들을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식별력도 없고, 훈련과 준비도 없이, 감수성을 개발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큰 위험에 처하도록 조장한다. 심지어 큰 공동체 세력이 여기에 없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여전히 큰 위험을 초래할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당신이 분별력 없이 너무 예민해지면, 세상에서 사는 것이 매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세상은 너무 짜증나고, 너무 가혹하고, 너무 신경에 거슬려서 경험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당신은 자신의 강점을 연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삶의 우여곡절을 피하고자 어쩔 수 없이 물러나야 한다. 이때 사람들은 점점 더 약해지고, 무능해진다. 그리하여 힘을 잃고, 자결권을 잃으며, 삶과 상호 작용하는 능력을 잃는다.
이것이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큰 공동체 세력들이 있음으로써 가속화되고 있다. 이 세력들에게는 인간 정신을 무력화하는 힘이 있으며, 여기 있는 사람들의 지배적인 생각과 믿음을 통제할 힘이 있다.
이것에 유일한 진짜 방어책은 앎을 기르는 것이고, 큰 공동체 관점과 이해를 개발하는 것이다. 여기서 사람들에게 기량이 필요하다. 즉, 자기 내면에 있는 앎, 창조주에게서 하사받은 아는 큰 마음을 찾는 기량, 상호 작용을 알아차리고, 정신 환경을 알아차리는 기량,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고 당신 삶에서 당신을 움직이는 큰 힘을 분별하는 기량이 필요하다.
이것은 상당히 놀랄 만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를 깨닫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기 배의 선장이라는 일반적인 믿음이 있지만, 당신이 그들의 배를 방문해보면, 선장은 찾을 수 없고, 권위도 없고 결단력도 없다. 당신이 사람들에게서 보는 양가성과 수동성은 그들이 자신의 일을 책임지지 않으며, 자신의 삶이나 운명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무엇이 자기 것이고 무엇이 자기 것이 아닌지조차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도처에 있는 사람들의 정신 환경은 자기 밖에서 생긴 힘에 지배받았다. 사실은 이 시기에 인간 가족 안에는 독창적인 사고가 거의 없다. 이것은 슬프기도 하고, 비극적이기도 하다. 슬픈 것은 인간 정신이 창의적이고, 놀라울 정도로 타고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극적인 것은 인류가 큰 공동체에 출현할 때, 이것이 인류에게 심각성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큰 공동체 안에 있으려면, 당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똑똑해야 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분별력이 있어야 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책임감이 강해야 하고, 앎으로 강해져야 한다.
만약 당신이 지구 밖으로 나가 큰 공동체를 여기저기 여행할 수 있다면, 곳곳에 있는 종족들이 어떻게 노예가 되고 지배받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러한 기본 역량을 개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큰 공동체에는 자유가 거의 없다. 큰 공동체에는 개인의 자유가 거의 없다.
아마도 이것은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당신의 교육에 필수적이다. 자유는 우리가 말한 이러한 기량들을 습득한 결과이고, 그 기량들을 당신 내면에서, 또 당신의 관계에서, 당신의 지역 사회에서 연마한 결과이다. 이 기량을 연마하지 못하면, 당신과 당신이 속한 사회는 자연스럽게 지배를 받게 된다. 큰 공동체에서는 지구와 마찬가지로 강자가 약자를 다스린다.
큰 공동체 상업과 무역에서는 그저 다른 종족의 의존국일 뿐인 사회가 대단히 많다. 그들은 자결권을 상실했다. 다른 종족들과 맺은 계약으로 인해 상실했고, 다른 종족들과 맺은 관계에서 그들의 초점과 결단을 유지하는 능력이나 무능력으로 인해 상실했다. 이런 일은 큰 공동체에 만연해 있다.
실제로, 만약 당신이 여기저기 널리 여행할 수 있다면, 진정으로 독립적이고 자결권이 있는 종족을 발견하는 일이 드물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것은 훈련과 능력이 부족한 결과이며, 부분적으로는 다른 종족과 맺은 관계의 결과이자, 그들과 상호 의존하게 된 결과이다.
그러므로 현자들은 큰 공동체에서나 지구에서나 숨어 지낸다. 그러나 인류는 숨어 지내지 않으며, 격리를 유지하거나 외부의 개입을 분별할 만큼 아직 현명하지 못하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이런 상황에 이르렀다. 즉, 우리는 인류가 매우 불리하고, 극도로 취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큰 공동체에서 강하고 자결권을 지닌 위치를 유지할 만큼 기량이나 분별력도 없고, 인간 가족끼리 협력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인류가 아직 자신의 부와 가치를 완전히 깨닫지 못한 채,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안다. 인류는 자신의 부나 심각한 곤경을 알 만큼 큰 공동체를 경험하지 않았다. 이것은 오랫동안 고립된 채 살아온 불행한 결과이다.
그러나 이제 세계 전역에 큰 부름이 있다. 사람들이 힘을 얻고, 개인으로나 집단으로 강해지고, 앎의 힘을 얻도록 큰 부름이 있다. 앎의 힘은 가장 큰 하사품이자 타고난 권리로, 다른 이들과 결합하는 데 필요한 협동의 기반을 얻게 하고, 부족적‧문화적 차이를 넘어 세계를 통합하게 한다.
왜냐하면 오직 통합된 인류만이 큰 공동체에서 살아남아 번영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분열된 집단과 부족들이 싸우는 세상은 외세의 지배하에 들어갈 수밖에 없으며, 이 외세는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이러한 갈등과 동일시와 집착을 이용할 것이다.
큰 공동체에서 번영하고 살아남으려면, 또 이 큰 삶의 환경에서 자유와 자결권을 유지하려면, 인류는 통합되어야 한다. 이것은 절실하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되겠지만, 삶이 이것을 요구하고, 당신의 환경이 이것을 요구하며, 이곳에 큰 공동체 세력이 있는 것이 이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인류가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인식이 커짐에 따라, 또 세계 도처에 있는 모든 사람이 같은 상황에 처해 있고, 근본적으로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인식이 커짐에 따라 조성될 것이다. 이 문제는 자연계의 악화, 지구 자원 감소로 생길 것이고, 가장 근본적으로는 큰 공동체 세력이 있는 것으로 생길 것이다.
오직 외부에서 온 위협만이 마침내 인류를 통합할 수 있게 할 것이며, 부족 간의 차이와 정체성을 초월하여 사람들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딜 수 있게 하는 공통의 필요성과 공통의 대의명분을 확립할 수 있게 하리라는 것이 유감스럽지만 사실이다.
지구가 분열된 부족들로 가득 차면, 큰 공동체에서 살아남을 수 없으며, 자결권을 유지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지구는 충분히 강하지 않을 것이고, 획일화된 상태를 이루고 집단 의지를 보여주는 다른 종족들과 싸우는 데 필요한 협동과 힘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 내면에 있는 앎이 이것을 가능하게 하지만, 앎으로 가는 길이 있어야 한다. 큰 공동체를 이해하고, 당신의 참된 본성을 이해하려면, 또 당신에게 꼭 필요한 힘을 얻을 수 있고, 세상의 회복과 보호를 위해 당신의 가장 큰 천부적 재능들을 주장할 수 있으려면, 당신을 준비시킬 수 있는 큰 공동체 앎길이 있어야 한다.
인류가 자연환경을 악화시켰으므로, 인류는 미래에 어쩔 수 없이 외부에서 자원을 찾도록 내몰릴 것이다. 여기에서 인류에게 필요한 것들이 생길 것이며, 중요하고 엄청난 기술과 능력을 기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는 우주가 마음대로 가져가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지구가 당신 집이고 당신의 태양계는 당신 앞마당을 나타내는 것과 같다. 당신은 마음대로 앞마당을 돌아다녀도 되지만, 그 너머로 가려고 하면, 다른 사람의 소유지로 들어간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이익이나 시설을 침해한다.
여기서 당신은 무역과 상업이 대부분 자율적으로 규제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모든 것을 지배하고 관리하는 단일 거대 조직은 없다. 큰 공동체 환경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어떤 윤리와 기준들이 현실적인 이유로 유지된다. 평화를 유지하고, 지속적인 무역을 유지하고, 비록 소수 국가가 피해를 보더라도 대부분의 국가가 번영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한다는 등의 이유로 유지된다.
여기서 인류는 자신이 삶의 더 큰 상호 작용 한가운데 있으며, 오랫동안 자리 잡아 인류의 등장으로 바뀌지 않을 상황 속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세상에 나간 어린아이와 같다. 어린아이는 자신에 대한 거창한 생각과 자신에게 삶이 줄 것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현실 세계에 나가면, 그것은 꽤 다르다.
이때 인류는 처음으로 삶에 도전하는 청소년과 같으며, 이상과 기대, 무한한 힘, 거룩한 약속으로 충만하여 있으나, 큰 공동체에서 인류를 기다리는 것은 어렵고 냉정한 배움의 과정이다.
그런데 인류가 큰 공동체에 참여하고, 앞으로 필요하게 될 무역과 상업에 참여하는 이 기회라도 가지려면, 인류는 기반을 개발해야 하며, 시작이라도 할 수 있도록 힘을 가져야 하고, 인간 가족 안에서 협력하는 환경을 갖추어야 한다.
당신은 “이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지? 나는 그저 한 사람, 한 개인에 불과하고, 내일은 일하러 가야 하고, 내 일을 처리해야 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당신과 깊은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당신을 세상에 오게 한 큰 목적은 지구의 진화와 절실히 인류에게 필요한 것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신 선물이 무엇이든,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든 간에, 우리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것은 모두 당신의 참된 본성을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능력과 전적으로 관련이 있다.
여기서 당신은, “현자는 숨어 지낸다.”는 교훈이 당신 삶의 영역 안에서 전적으로 진실되고 타당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여기서 당신은 자신의 삶의 맥락 안에서, 당신 또한 자신의 정신 환경을 유지하고 확립해야 하며, 항상 정신 환경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이것을 구축하는 법과 유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여기서 당신 역시 자기 삶의 맥락에서, 무엇이 참된 관계의 기반인지, 자신의 일에서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큰 조화와 협력을 이룰 수 있는지를 배워야 할 것이다.
큰 공동체에서 진실인 것은 모두 당신 삶의 영역 안에서도 진실이다. 하지만 당신이 이것을 깨닫는 순간에도, 앎길에서 준비하고 있다면, 당신이 사는 삶의 더 큰 파노라마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 것이다.
단순히 당신 자신의 개인적 일을 돌보고 생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당신에게는 삶에서 더 큰 책임과 더 큰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자신의 참 본성을 알고자 하고, 자신을 세상에 오게 한 큰 목적을 체험하고 표현하고자 한다면, 자신의 집착을 넘어서야 한다. 당신은 자신의 일을 조화롭게 관리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너머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것, 당신이 응답하도록 당신을 부르는 것을 보아야 한다.
작고 자기중심적 삶을 영위하는 데는 큰 보상이 없다. 단지 작은 보상과 큰 비용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더 큰 삶에 들어서면, 큰 대가를 치르지만, 그 대가보다 훨씬 더 큰 보상이 있다.
당신 스스로 계단을 밟고, 그 계단이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발견하는 것으로만 당신은 이것이 진실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단지 당신이 사는 더 큰 환경을 가리키고, 당신의 삶과 미래와 운명을 형성하는 더 큰 힘을 가리킬 수만 있다. 하지만 당신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당신에게 관점과 이해를 제공한다. 이 관점과 이해로 당신은 진정으로 이곳에 자신이 있는 본질을 이해하고, 지구의 운명을 형성하는 큰 사건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