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08일
미국 콜로라도 보울더에서
마샬 비안 서머즈에게
받다
전 세계에 불안정과 불확실성이 엄청나게 커지는 시기, 즉 자원 고갈, 환경 악화, 기상 악화, 경제와 정치의 불안정성 증가, 지구의 남은 자원을 놓고 벌이는 전쟁과 분쟁의 위험 등 변화의 큰 물결이 세계를 강타하기 시작하는 시기에 접어들고 있음이 분명하다.
지금은 인류가 지구를 오용하고 남용한 결과가 드러나는 시기이며,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엇갈리는 흐름이 많은 시기이다.
이러한 불확실성 가운데는 사람들이 변화의 큰 물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직면하게 될 시련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등이 있다. 이것은 세계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것인데, 처음에는 전 세계의 가난한 국가 국민들이 가장 어려울 것이다. 그들은 모든 것이 비싸지고 기회가 감소함에 따라, 생존을 위해 발버둥칠 것이고 경제적 압박, 사회적 압박 등 점점 더 많은 압박에 직면할 것이다.
그러나 이 영향은 부유한 국가에도 미칠 것이며, 그 국가 국민들은 금융계가 잘못 관리되고 무능하게 운영된 결과로 많은 재산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인류가 살아가는 방식을 모두 바꿀 변화의 큰 물결일 것이다.
큰 물결의 힘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큰 물결은 경제 정책이나 정치 정책, 혹은 수많은 사람의 믿음과 가정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지금은 큰 청산의 시기이자 결단의 시기이며, 세상의 큰 불확실성과 격변을 마주해야 하는 시기이다. 당신은 이것을 마주해야 할 것이며,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마주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환상이나 자기 집착에 빠지는 것으로 벗어날 수 없으며, 인류 문화가 만들어낸 수많은 탈출구로 벗어날 수가 없다. 심지어 논리적으로도 벗어날 길이 없다. 당신은 시골로 도망가서 안전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경우 그곳에 고립되면 전혀 안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상황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하고 아주 많은 경우에 사람들의 부와 기회가 줄어들면서 일어나는 많은 분노와 부정, 많은 책임 전가와 비난을 당신은 보게 될 것이다. 당신은 변화의 큰 물결에 대해 사람들의 비전과 준비가 부족하여 생기는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무방비 상태로 당할 것이며, 준비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충격은 매우 힘들며, 많은 경우 끔찍하고 극단적일 것이다. 갑자기 그들은 모든 것이 이제 바뀌었음을 알게 된다. 그들에게 문이 닫히고 있는데, 그들은 그런 상황이 다가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세상의 모든 큰 변화에는 신호와 조짐이 먼저 나타난다. 그리고 당신 내면, 더 깊은 수준에는 앎의 힘과 현존, 신이 당신 내면에 심어 놓은 더 깊은 지성이 있으며, 이 지성은 당신을 인도하고 보호하며, 삶에서 더 큰 성취로 당신을 이끈다.
이 지성도 당신에게 신호를 보내고 조짐을 알려주었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관심사, 욕망, 어려움, 갈등에 정신이 팔려 대응하지 않는다. 그들은 너무 산만해서 세상의 신호나 자기 내면에서 앎이 보내는 신호 중 어느 것도 인지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세상이 변하는 상황에 무방비 상태로 당하게 된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대응하며, 그때는 많은 것을 하기에는 정말 너무 늦다.
많은 사람이 공황 상태에 빠질 것이고, 매우 위험한 형태로 행동하거나 처신할 것이며, 어떤 사람들은 그저 완전히 용기를 잃고, 자신이 예측할 수도 있었던 바로 그 상황에 희생당한다고 느낄 것이다. 또 다른 많은 사람은 상황에 따라 매우 제약을 받거나 불리한 조건에 있어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세계가 변하고 있고, 기후가 변하고 있다. 당신의 상황도 어떤 변화를 겪고 있지만, 그 결과는 모른다. 이제는 매우 많은 일이 일어날 것이므로, 그 결과를 예측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인류가 이러한 어려움에 맞서기 위해 통합할 것인지, 아니면 인류끼리 싸우고 경쟁할 것인지, 인류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당신이 변화의 큰 물결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이다. 즉 자신의 위치와 상황, 강점과 약점, 자산과 부채를 평가할 때이다. 당신 자신이 다가오는 큰 변화에 휩싸이거나 압도당하면, 당신은 다른 사람을 도울 수도, 세상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없다.
지금 당장 당신이 해야 할 몇 가지 일이 있다. 당신은 변화의 큰 물결을 알아보아야 한다. 당신은 이 변화를 직시하기 위해 용기와 객관성을 가져야 한다. 기존의 편견, 믿음, 태도를 강화하려고 단순히 이 변화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새로운 교육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이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다음으로 당신은 자신이 사는 곳, 사는 방식, 이동 방식 등 이 모든 것이 당신 삶의 변하는 환경에서 지속할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숙고해야 한다. 즉 당신이 하는 일, 당신이 사는 곳, 당신의 교통수단, 당신 관계의 강점과 약점, 건강의 강점과 약점, 이 모든 것이 변화의 큰 물결에 비추어 재평가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할 힘을 찾으려면, 또 당신 자신이 반발하고 걱정하고 좌절할 때 당신에게 필요한 객관성과 명확성을 찾으려면, 이것은 당신 내면에 있는 큰 힘, 내면에 있는 앎의 힘에서 나와야 한다. 당신의 이성은 압도될 것이고, 감정은 흥분할 것이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깊어지면서 좌절감도 커지고 깊어질 것이다.
당신은 자아실현의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당신은 변화의 큰 물결에 비추어 자신의 모든 목적과 목표, 관계의 가치를 기꺼이 재고해야 한다. 이 평가를 수행할 힘과 객관성을 얻으려면, 당신은 자신의 이성, 자신의 관념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할 힘은 당신 내면에 있는 더 큰 힘, 즉 앎의 힘에서 나와야 한다.
앎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앎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상실과 박탈의 가능성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앎은 다른 사람들의 가치관, 믿음, 가정에 설득되지도, 조종당하지도 않는다.
앎은 당신의 내면에 순수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앎은 오염될 수 없으며, 세상은 물론 우주의 어떤 세력에도 설득되거나 조종당할 수 없다. 앎은 당신 지혜가 머무는 곳이며, 당신의 온전함이 나오는 곳이다. 오직 앎의 힘을 통해서만 당신은 현명하게 자신의 삶을 재평가할 수 있으며, 무엇을 변경하거나 바꾸어야 하는지, 무엇을 강화하고 향상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변화의 큰 물결을 정직하게 마주하면, 당신 마음은 혼란스러운 상태에 빠질 것이다. 당신은 정말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당신은 당면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계획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상황은 당신이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수백 번 바뀔 수도 있다. 그래서 당신은 멀리 내다보고 계획할 수 없으며, 무엇이 인류를 구하거나 구원할 것인지에 대한 자신의 가정에 의문을 품어야 한다.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것은 점점 증가하는 인구가 자원이 점차 줄어드는 상황에 봉착하는 세상이다. 사람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기술만으로 이 딜레마를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왜냐하면 기술은 당신이 확보하기가 점점 더 어려운 바로 그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의 상황과 당신 나라 삶의 상황을 고려할 때, 사람들은 이 근본적인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당신에게 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당신이 가정한 것들을 너무 신뢰하지 말라. 지금은 빈틈없이 주의를 기울이며 대응해야 한다. 당신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또 주변 상황이 변함에 따라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도록, 어쩌면 여러 차례 바꿀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당신은 자기 생각을 바꿀 준비, 지금 하는 일을 재고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당신은 이렇게 변하는 상황에서 현명하게 행동할 힘과 객관성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그리고 당신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절망과 혼란에 빠져 있을 때 당신은 평정심과 명료한 마음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들은 중요한 질문이니, 무시하지 말라. 이 모든 것이 불확실성과 불안정이 커지는 세상을 직시하는 일의 일부이다.
당신 내면에는 강한 것이 있고 약한 것이 있으며, 지혜가 있고 어리석음이 있다. 당신은 자신의 강한 것과 지혜를 찾아야 하며, 그것은 표면 마음 아래 깊은 곳인, 앎의 수준에 있다. 즉 사회적 조건화, 선호, 믿음, 태도의 영역 너머에 있다. 아주 소수의 세상 사람만 실제로 의미 있게 발견한 이 깊은 지성이 이제는 당신의 나침반이자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세상 마음과 깊은 지성을 연결하려면 앎으로 가는 계단을 밟아야 한다. 이 둘은 연결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 마음은 당신 내면에 있는 앎의 안내와 지혜와 조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은 당신에게 이런 식으로 말한다.
당신은 자신이 많은 상황에서 제약을 받고 제지를 받으며, 어떤 상황에서는 동기 부여를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앎은 모든 것이 ‘예’ 아니면 ‘아니요’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느 곳으로 이사하거나 이사하지 않는다. 당신은 어느 결정을 내리거나 내리지 않는다. 당신은 저것이 아니라 이것을 선택한다.
이런 능력을 경험하려면 당신은 모든 질문을 ‘예’ 아니면 ‘아니요’로 쉽게 답할 수 있는 형식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당신은 매우 정직해야 한다. 어떤 질문은 부정직하다. 그 질문은 둘 다 적절하지 않은 것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당신은 반드시 그 본질적인 질문, 맨 먼저 물어야 하는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바로 이것이 앎과 결합할 수 있도록 당신 마음을 준비하는 방법이다.
앎은 당신 내면에 있는 또 하나의 이성이나 성격이 아니다. 앎은 매우 근본적이고, 매우 현명하며, 매우 강력하다. 당신은 앎에게 속임수 질문, 조작된 질문, 무지한 질문을 하고 나서 답을 얻을 수는 없다. 앎은 여기에 응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반드시 가장 기본적인 질문, 즉 시작하는 질문으로 물어야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은 “여기로 가야 하는가, 아니면 저기로 가야 하는가?”라고 물을 수 있지만, 그것은 첫 질문이 아니다. 첫 질문은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가?”이다
당신이 매우 단순하고 직접적인 이런 방식으로 질문하면, 자신의 소망과 선호를 넘어 내면 깊은 곳에 응답이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알 것이다. 그리고 앎은 당신이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당신에게 주지 않거나, 당신을 위해 그 신호를 보내줄 것임을 당신이 알면, 당신은 자신의 욕망이나 선호나 두려움에 지배받지도 조종당하지도 않는 독립적인 지혜가 실제로 당신 내면에 있음을 깨닫기 시작할 것이다.
사람들은 앎에게 다가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이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앎이 얻지 못하게 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앎이 이렇게 할 것이라는 사실 자체가 앎이 존재한다는 증거이며, 앎이 자기기만의 한 형태도, 상상의 산물도 아니라는 증거이다. 당신 내면에는 당신이 조작하거나 다른 사람이 조작할 수 없는 독립된 어떤 것이 실제로 있다.
사람들은 이것을 직관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앎이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직관을 순간적으로 경험하는 것만으로는 당신이 내면에 있는 앎의 힘도 제대로 알지 못하며, 당신이 앎을 따르고 앎과 함께하는 법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또 이 훌륭한 조언을 구하는 데 단순해지고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법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이때 당신 내면에 있는 앎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내면에 있는 앎도 중요하다. 어떤 사람들이 당신에게 진실을 말해줄 것이다. 그들은 더 깊은 수준에서 당신과 공명한다. 어쩌면 그것은 그들이 전해야 하는 것의 그저 일부일 수도 있지만, 당신은 이것을 듣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인다. 당신은 지혜의 증거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당신은 판단하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러지 않으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있는 지혜의 증거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어떤 수준의 지혜를 표현하지 못한다고 해서 당신은 그들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앎이 드물고, 사람들이 습관과 사회적 관습에 따라 행동하며, 정신 환경의 힘이 조종하고 지배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신이 보는 모든 곳에서 앎을 찾을 수 있다고 기대하지 말라. 앎은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며, 자멸적이고 어디로도 자신을 이끌지 않는 삶의 길을 선택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변화의 큰 물결을 알지 못하고 준비하지도 않는다.
증거가 전 세계적으로 쌓여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에게만 사로잡혀 있다. 마치 이처럼 증거가 점점 쌓여가는 이 세상 현실에서 자신을 격리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이 상황에 대처할 어떤 능력도 없다고 느끼므로 알기를 두려워한다. 그들은 알고 싶지도, 의식하고 싶지도 않다. 왜냐하면 그 상황이 그들을 불안하게 하며, 불안감과 불안정, 무력감과 절망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매우 쉽게 겁을 먹고, 자기 삶에서 일어나는 현실과 만일의 사태를 기꺼이 직시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직시할 수도 없는 것은 바로 앎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앞날을 미리 생각하지도, 미리 계획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 순간을 사는 데만 정신을 팔려고 하거나, 미래가 과거와 같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이런 맥락, 이런 가정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계획한다. 삶이 실제로 다른 곳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사람들은 아주 쉽게 압도당하고 당황하게 된다. 그들은 수평선 너머로 다가오는 것을 보지도, 제대로 분별하지도, 그것에 현명하게 대응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앎이 가장 중요하다. 당신은 평생 먹을 식량을 비축할 수는 없으며, 평생 쓸 만큼 어떤 것도 비축할 수 없다. 당신은 모든 사태에 효과적인 계획을 세울 수는 없다. 당신은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도망칠 수 없다. 왜냐하면 고립된 사람들은 변화의 큰 물결에 직면하여 매우 취약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나 경제에 의존할 수도 없다.
당신은 신이 당신을 돌볼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신은 당신을 안내하도록 이미 당신 내면에 앎을 심어 놓았다. 신은 온 우주, 우주들 속에 있는 우주를 관리한다. 신은 당신의 일을 관리하는 데 몰두하지 않는다. 신은 완벽하게 안내하는 지성을 당신에게 주었지만, 그 지성은 당신 내면 깊은 곳에 있다. 그것은 당신이 일상의 삶을 사는 표면 마음에 있지 않다.
객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자신에게 “무엇이 다가오는가?”라고 물어보라. 귀를 기울이라. 들은 것을 적고, 며칠, 몇 주에 걸쳐 반복해서 물어보면서, 당신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살펴보라. 더 깊이 귀 기울이라.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단순한 가정이나, 정부나 경제, 인간의 창의력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단순한 가정에 설득되지 말라. 더 깊이 귀 기울이라. 당신의 불안감에 귀 기울이라. 당신의 깊은 경험에 주의를 기울이라.
당신이 혼자 속으로 말하거나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말하는 똑같은 기존 가정이나 안심시키는 말에 귀 기울이지 말라. 만약 당신이 앎의 현존을 인지하고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으로서 앎을 요청하려면, 이때 기꺼이 불편함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 만약 불확실성을 직시할 수 없다면, 당신은 분명히 현실을 다룰 위치에 있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당신 내면의 심화 평가에 해당하지,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소재가 되는 어떤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당신 내면에서 깊이 숙고해야 하는 어떤 것이다.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질문과 함께 있고 문제와 함께 있어야 하는 어떤 것이다.
변화의 큰 물결에 대한 간단한 해결책은 없다. 당신은 이 문제들을 처리하고, 이 문제들과 함께 살고, 이 문제들에 대해 창의적이어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당신은 취미나 꿈이나 환상을 추구하면서, 자신이나 세상과 단절된 채, 가정에 기대어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 창의적으로 삶을 다시 살아가게 된다.
신은 변화의 큰 물결에 대비하여 인류를 준비시키려고 세상에 새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하여 인류에게 경각심을 주고, 인류를 강하게 하며, 앎길을 가르치고, 통합과 협동을 장려한다. 그리고 믿음이나 전통이나 관행의 수준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그대로의 앎의 수준에서 당신 영성에 대한 이해를 제공한다.
문제는 당신에게 신앙심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당신이 앎으로 강하냐 하는 점이다. 문제는 당신이 신자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당신이 앎으로 강하냐 하는 점이다. 이것은 깨달음의 문제도, 환상적으로 높은 의식 상태에 도달하는 문제도 아니며, 앎에 기반을 두고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변화의 큰 물결 앞에서 갑자기 비극적으로 실패할 수도 있다. 자신의 종교를 굳게 믿는 사람들은 변화의 큰 물결에 압도당할 수도 있다.
당신은 자신의 환경을 상대해야 한다. 물질적 환경, 자연계, 사회적 환경, 경제적 환경 등을 상대해야 한다. 당신은 이 환경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여기에서 단절된 채로 자기 내면의 환상 속에서 살아서는 안 된다.
심지어 동물들조차 항상 지켜본다. 항상 자신의 환경과 연결되어 항상 위험이 있나 망을 보고, 변하는 상황을 주시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자기 내면세계에 사로잡혀, 자기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거의 의식하지도, 변하는 상황을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돌아다닌다.
여기서 문제가 보이는가? 사람들은 자신의 꿈, 욕망, 목표, 갈등, 타인에 대한 불용서, 후회, 트라우마에 빠져 있다. 여기서 그들의 지성은 그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에 대응하지 못하며, 수평선 너머에서 무엇이 다가오는지 보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직시할 만한 힘과 확신의 진정한 원천을 찾지 못했다.
세상을 바라볼 때, 당신이 세상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라. 당신은 미래와 관계가 있다. 당신은 세상에 봉사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것이 당신을 세상에 오게 했으며, 이곳에 온 당신의 큰 목적이다. 당신은 미래와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변화의 큰 물결이 오는 시기에 태어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곳에 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큰 물결을 그저 엄청난 불편함, 비극, 불행으로만 보지 말라. 당신은 이곳에 이런 시기에 살려고 왔으며, 이런 상황에 맞서면서 살려고 왔다.
당신 내면에 있는 앎은 이것이 사실임을 안다. 그래서 앎은 변화의 큰 물결에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그러기보다는 앎은 공헌할 기회를 찾으며, 당신을 적절한 곳에 자리 잡게 하려고 한다. 그럼으로써 당신이 변화의 큰 물결을 헤쳐 나갈 수 있고, 변화의 큰 물결에 압도되거나 제압되지 않을 것이며, 당신 삶이 변화의 큰 물결로 파괴되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자신감과 자결권이 변화의 큰 물결 앞에서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신은 세상에 무엇이 다가오는지 안다. 인류는 알지도 못하고 준비도 되지 않았다. 신은 당신 내면에 앎을 심어 놓아, 앞으로 다가올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가도록 당신을 준비시키고, 당신에게 힘, 불굴의 정신, 분별력, 지혜를 준다.
그러므로 불확실성에 익숙해지라. 왜냐하면 당신은 불확실성이 커지는 세상, 불화가 커지는 세상에 살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비난하지 말라. 왜냐하면 당신이 봉사하러 온 곳이 바로 이 세상이기 때문이다. 변화의 큰 물결에서 물러서지 말라. 당신은 변화의 큰 물결에 맞서야 한다. 그리고 앎이 당신을 인도하도록 허용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별해야 하고, 준비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별해야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리지 말라. 다른 사람들과 일치한 의견에 의존하지 말라. 준비할 시간이 있는 지금 당신은 행동해야 한다.
당신의 직업이나 직종이 미래에도 지속 가능한가? 그것이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서비스나 상품을 제공하는가? 당신 직업이 경제 불황에도 존속할 수 있는가? 당신은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고도 다닐 수 있는 그런 곳에 사는가? 당신은 경제적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재원이 충분한가? 개인적 건강, 신체 건강, 정신 건강 등 당신의 건강 상태는 어떠한가? 당신은 변화의 큰 물결을 인식하고 용기 있게 준비할 수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가? 아니면 금방 무너질 사람, 무력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 당신에게 의존하게 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가?
당신은 자녀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돌보아야 하고, 어쩌면 노부모도 돌보아야 하겠지만, 그 외에는 사람들이 당신에게 매달리게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당신에게는 세상에서 해야 할 큰 일이 있고, 변화의 큰 물결은 삶에서 이 큰 목적을 발견하고 표현하기에 완벽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변화의 큰 물결은 완벽하지만, 오직 그런 의미에서만 완벽하다. 왜냐하면 변화의 큰 물결이 엄청나게 어렵고 매우 비극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그들의 부와 이점을 잃을 것이다. 이것은 큰 고난의 시기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인간 가족에게 큰 복원의 시기가 될 수도 있다. 국가들 및 사람들의 집단들은 변화의 큰 물결에서 살아남고 자원 분배를 보장하려면 협력해야 할 것이다. 이타적으로 활동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를 많이 해야 할 것이다.
오직 위험에 처한 세상을 직시할 때만 인류는 미래를 위한 새로운 기반을 쌓을 수 있는 그런 협력을 실제로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는 큰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큰 어려움도 있다.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세상에서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되도록 줄이고, 필요한 자원을 최소화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되도록 빚지는 일을 줄이고, 빚에서 최대한 자유로워지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 삶을 단순화하라. 당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 재정적 부채에서 벗어나라.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고 활동하는 방법을 알아보라. 만약 당신이 시골에 산다면, 물품을 더 쉽게 구할 수 있는 유통 센터가 더 가까운 지역으로 이사하는 것을 고려해 보라.
신체적 건강과 정서적 건강을 튼튼하게 하라. 취미와 관심사를 한쪽으로 제쳐두거나 최소한으로만 유지하라. 왜냐하면 당신이 지금 변화의 큰 물결을 알아차리고 대비하며, 변화의 큰 물결에 대해 교육을 받으려면, 당신의 모든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진실이 당신을 흔들 것이므로 당신 내면에 있는 불편함과 불안을 기꺼이 직시하라. 처음에는 충격적이고, 당신은 절망감과 무력감을 느낄 것이다. 이때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신뢰가 없어진다. 그러나 이 시기는 지나갈 것이고, 당신은 변하는 이 환경과 점점 커지는 이 세상 현실에 적응하면서 안정을 찾을 것이다.
당신은 그저 단순히 굳게 결심하게 되는 지점에 도달할 것이며, 확실히 알게 되고 더 객관적이 된다. 당신은 자신이 직시해야 할 현실이 바로 이것임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신이 사는 방식, 생활 방식, 의무, 계획, 목표 등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다.
사람들, 특히 부유한 나라 사람들은 자신들의 환경에서 너무 단절된 상태에서 살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정말로 속수무책일 것이다. 그들은 정부나 다른 기관 등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일들을 처리해 주는 것에 매우 익숙하므로 변화의 큰 물결에 직면하는 데 자신이 꽤 무능하다고 느낀다. 그들은 “누군가가 이것을 해결해야 한다!”라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대신 처리해 주는 것에 의존하여 그렇게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제 그들은 더 자립적이고, 더 유능하고, 더 현존해야 할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렇게 하기가 더 쉬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끊임없이 삶을 마주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부자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전환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매우 오랫동안 자연계와 진짜 관계를 맺지 않고 자신의 환상 속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은 경제적 현실이나 사회적·정치적 현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평생 꿈을 꾸며 살아왔지만 이제 깨어나야 한다.
모든 것은 변화의 큰 물결 앞에서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당신은 사람들이 추구하거나 집착하는 것들 대부분은 수평선 너머에서 다가오는 것 앞에서 실제로 아무런 가치와 의미가 없거나 대단히 하찮다는 것을 알 것이다.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이처럼 변하는 힘이 엄청나게 집중되는 것 앞에서 어떻게 자신의 안정을 유지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이다. 여기서 주안점은 무엇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고, 기쁘게 하고, 끝없이 즐겁게 해줄 것인가에 있지 않을 것이다.
인류 경제는 성장에 주안점을 두지 않을 것이며, 안정에 주안점을 둘 것이다. 인류 경제는 이윤 추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안정 유지가 중요할 것이다.
인류가 타고 있는 배는 서서히 가라앉고 있지만, 사람들은 상갑판에서 파티를 하거나, 개인실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추구하는 일에 몰두하거나,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으로 여념이 없다. 그들은 자기 삶의 바로 근간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삶의 상황 자체가 변하고 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지금 과거와는 다른 미래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넘어야 할 큰 문턱은 큰 문턱을 직시하는 것, 정신을 차리는 것, 일련의 변하는 상황을 알아차리는 것이고, 이것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을 충격과 실망, 커다란 불확실성이나 좌절감을 겪는 것이다.
그렇지만 당신은 상황이 변하기 전에 자신을 위해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려면, 이 초기 반응을 반드시 지나가야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리면 그때는 당신에게 선택지가 거의 없을 것이고, 당신이 어떤 일을 하든 정말 큰 비용과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당신은 자신의 삶을 높은 곳에 구축해야 한다. 당신 내면의 높은 곳, 당신 삶의 상황 측면에서 높은 곳에 구축해야 한다.
이 심화 평가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은 주거지를 옮겨야 하거나, 직업을 바꾸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때로는 자신과 함께 있는 사람들, 응답할 수 없거나 응답하지 않을 사람들을 떠나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할 때 당신의 모든 삶이 하나로 모일 것이다. 당신은 자신이 누구이고 왜 세상에 왔는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세상이 당신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당신은 자기 삶과 소망과 꿈을 숙고하면서 방향을 잃고 끝없이 방황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삶이 당신에게 어떤 것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당신은 사람들과 의미 없는 대화를 하거나 어떤 덧없는 행복이나 만족을 구하면서 의미 없는 활동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삶이 당신에게 어떤 것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당신은 활기를 느낄 것이고, 당신 삶을 중요하게 여길 것이며, 어쩔 수 없이 현실적이고 관찰력 있고 분별력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것이 복원이다.
당신이 호사를 누리거나 풍요로울 때 정신을 차릴 수 없다면, 당신은 어렵고 궁핍할 때 정신을 차려야 한다.
앎이 당신의 안내자이고, 당신의 나침반이며, 당신 삶의 중심이자 근원이다. 앎은 슬기롭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조종당하거나 설득당하지 않는다. 앎은 당신 내면에 있는 무게 중심이다.
여기서 당신은 외적인 것에 거의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자기 내면에 있는 앎과 다른 사람들 내면에 있는 앎에 의지해야 할 것이다. 당신은 자기 삶을 완전히 재평가해야 할 것이고, 지혜와 명료함으로 재평가를 할 수 있으면, 이렇게 해서 복원될 것이다.
이 경고는 사랑의 선물이다. 이것은 당신이 알지 못하고 준비되지 않아 아직 당신 힘의 근원을 모르므로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랑의 선물이다. 신의 새 메시지는 인류를 위한 깊은 사랑의 선물이다.
사람들이 두려움, 불안, 부정, 거부로 반응하더라도, 이것은 여전히 사랑의 선물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경고하고, 자녀가 그 경고를 비웃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경고가 진짜가 아니며 사랑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결정권은 당신 내면에 있다. 앎은 당신 내면에 살고 있다. 당신에게는 준비할 힘이 있고, 자각할 힘이 있으며, 당신 내면에 있는 두려움, 무력감, 절망을 극복할 능력이 있다.
큰 물결은 당신 삶을 활성화할 것이고, 당신 삶을 집중시킬 것이다. 그리고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큰 목적과 큰 선물을 당신에게서 불러낼 것이다.
이것이 당신 시대의 힘이다. 당신이 온 시대, 인류의 운명과 숙명을 바꿀 시대, 세상의 모습을 바꿀 시대의 힘이다.
결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 당신의 초점은 공헌하는 것이다. 공헌을 발견하여 실천하는 것이다. 하지만 먼저 당신은 당신 삶에 질서와 균형을 가져와야 하며, 이 심화 평가를 수행해야 한다.
당신은 자신의 힘을 찾아야 하고, 이 힘에 대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 당신은 자아실현에 대한 꿈, 행복 추구와 삶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서 삶의 현실로 돌아가, 과거와는 다른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