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received by
Marshall Vian Summers
on 11월 1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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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4일
미국 콜로라도 보울더에서
마샬 비안 서머즈가
받다

부처는 인간 가족에게 교정을 주지만 새로운 기회도 주는 천사의 회중에서 파견된 위대한 메신저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선물은 독특했고, 그가 세상에 있었던 시대는 그의 메시지가 전파되어야 했던 때였다.

이러한 것들은 지구상에서 결정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은 당신 삶의 큰 그림이나, 신이 오랜 세월을 두고 세상에 하려는 것을 보지 못하며, 위대한 메신저들이 인간 정신에 활기를 불어넣고, 신이 각각의 내면에 심어 놓은 깊은 앎을 계속 살아 있게 하려고,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순간인 전환기에 온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메신저들이 오지 않는다면, 앎은 사람들 내면에서 분명히 흐려지고, 약해지고, 없어질 것이다.

먼저, 당신은 예수와 부처, 무함마드가 모두 천사의 회중에서 왔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신이 그들의 원천이다. 신은 인간성의 기반을 쌓고 인류 문명을 계속 건설하기 위해 유일무이한 메시지를 전하려고 서로 다른 시대, 다른 지역에 그들 각각을 세상에 파견하였다.

이것은 신의 큰 계획의 일부이며, 당신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계획이다. 왜냐하면 그 계획은 무수히 많은 세계와 종족을 아우를 수 있도록 지구를 넘어 훨씬 더 멀리까지 미치기 때문이다. 그 종족들은 모습이 인류와는 아주 매우 다르다. 하지만 당신처럼 그들도 물질 현실의 분리 속에서 살고 있으며, 신은 모든 이를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지구상에 메신저가 출현하는 의미, 그리고 그 출현이 무엇을 의미하고, 그 각각이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더 폭넓은 이 관점이 필요하다. 이것을 이해하면, 누가 더 뛰어난 교사인지, 또 누가 가장 위대한 메신저이고, 누가 최후의 선지자인지에 대해 종교 간의 논쟁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평가일 뿐이며, 신의 큰 계획을 헤아릴 수 없다. 왜냐하면 시간을 초월한 창조물을 떠나서 사는 당신과 온 세상을 복원하는 법, 사실은 물질 우주 전체를 복원하는 법을 오직 신만이 알기 때문이다.

어떤 신학이나 종교적 이해, 인류의 어떤 개념이나 우주에 있는 어떤 개념도 이처럼 큰 것을 담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더 큰 시야와 이해를 가질 것이고, 그 시야와 이해로 지구의 큰 미래를 건설하는 데 다른 이들에게 더 큰 가능성을 줄 것이다.

부처는 그의 나라에서 종교가 크게 타락하고 오용되던 시기에 왔다. 그는 왕자로 태어났지만, 왕자의 삶을 포기해야 했다. 그런데 순수한 금욕주의자의 삶도 포기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는 둘 다 정말 올바른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세상의 아주 많은 지역에서 너무나 만연한 모든 신화와 우상숭배,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잘못된 영적 수행과는 다른, 즉 내적 성장에 중점을 두고, 마음을 정화하고 맑게 하는 데, 또 세상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더 높은 윤리적 이해에 이르는 데 중점을 두는 영적 수행을 개발해야 했다.

여기서 당신이 이해해야 하는 것은, 그가 살던 시대는 사회 변화와 진보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그 당시는 내적 삶을 구축하기 위한 종교이지, 본질적으로나, 직접적으로 외적 삶에 영향을 주기 위한 종교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시기에는 실질적인 사회 진보를 이룩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후대의 시대까지 기다려야 했으며, 그러한 진보가 가능한 시대에 사는 후대의 메신저들이 주안점을 두었다.

그의 가르침에 다른 해석이 있고, 다른 학설이 있으므로, 여기서 이해해야 할 아주 중요한 것은, 당신이 영적으로 아무리 많이 준비하고, 당신 마음이 아무리 깨끗해지고, 큰 현실을 경험하는 당신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당신은 봉사하기 위해 세상에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영적 수행의 끝은 지복이나 무아지경이 아니라, 봉사이고 공헌이다. 이것은 메신저들에게도 항상 똑같이 해당된다. 그런데 당신도 이 점은 마찬가지이다. 물론, 당신은 훨씬 더 작은 역량으로 봉사하도록 여기에 파견되었다. 하지만 주안점은 여전히 같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믿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봉사하는 것, 당신이 공부하는 것, 당신이 내면에서 보강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종교 수행이다. 모든 종교 수행은, 그것이 아무리 단순하거나, 엄청나게 보일지라도, 본질적으로 이렇게 살 수 있도록 당신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부처는 당신이 금욕주의자가 될 필요도 없고, 세상을 완전히 등질 필요도 없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리하는 것은 주안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으로 돌아와 가장 평범한 환경에서, 때로는 어려운 환경에서 봉사해야 했다. 그는 사회의 모든 비극과 학대를 직면했고, 최상층과 최하층에게, 또 가장 특권이 적은 이들에게 말했으며, 그의 시대에 그의 말을 들을 수 있는 모든 사람을 회복하고 복원할 수 있는 긴요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고초를 겪으며 여행했다.

그러니 영적 수행이 세상을 등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왜냐하면 당신들은 모두 빨리든 늦게든 간에 세상을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더 늦기를 바라겠지만, 결국 모두 세상을 떠날 것이다. 당신이 여기서 행한 것, 여기서 베푼 것, 여기 있는 동안 내면에서 융화한 것, 여기 있는 동안 당신 내면에서, 또 다른 사람들을 용서한 것, 그것이 바로 성장이다.

당신은 비참하고 기만적이고 비난하는 사람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이런 특성은 이곳에 사는 동안 버려져야 하고 대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분리의 삶에서 비롯된 산물이기 때문이다.

고향에는 이런 특성들이 있을 곳도, 그런 현실도 없으며, 이런 특성들을 일어나게 할 수 있는 것도,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없다. 하지만 오류와 불만, 비극과 학대가 있는 이곳 세상은 마음을 깨끗이 하기 위한 완벽한 곳, 고요하고 단순해지고, 내면에 깊이 귀 기울이고, 유혹과 영적 영광, 종교의 모든 과시적인 요소를 버리고 순수한 경험으로 가는 완벽한 곳이다. 이것이 부처가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봉사, 이 사심 없는 봉사, 끊임없는 베풂이 초창기 극단적인 영적 수행에서 그가 이룬 모든 것을 진실하고 실제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그의 삶의 큰 가르침이며, 아마도 그를 따르는 많은 추종자가 간과한 가르침일 것이다.

오직 신만이 신에게 가는 길을 안다. 오직 신만이 당신을 순수하고 완전하게 복원하는 법을 안다. 그리고 신은 깊은 지성인 앎을 당신 내면에 심어 놓고서, 당신을 이 앎으로 데려가고, 당신을 참된 삶의 길로 데려가며, 당신에게 마음을 정화할 시간을 주고, 삶을 조화롭게 하고, 더 큰 길을 선택하게 한다.

넓은 의미에서 어떠한 사회 변화와 진보도 실제로 가능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그 주안점이 내적 세계, 내적 추구, 내적 여정에 공헌이었으며, 종교적 상징물이나 종교 이념, 종교적 신념에서 자유로운 순수한 접근에 공헌이었다.

이 위대한 메신저를 따르는 이들은 모두 그들의 영적 수행이 더 큰 봉사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도피의 삶이어서는 안 되며, 봉사하는 삶이어야만 한다. 당신이 일을 마치면, 당신 일은 끝날 것이고, 당신은 여기에 다시 올 필요가 없다. 하지만 심지어 이때도, 당신은 더 높은 봉사의 수준으로 옮겨갈 것이다. 이 세계와 우주의 모든 세계,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모든 우주를 감독하는 천사의 회중에 봉사할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크고 완벽하고 우아하고 포괄적인 계획이므로, 당신 마음은 이 계획을 아우를 만큼 충분히 크지 않다. 하지만 당신은 그 계획, 즉 그 현존과 힘, 내재한 방향을 체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신은 당신 내면에 앎을 심어 놓았고, 앎은 당신의 근원인 신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앎은 당신의 자연스러운 상태이다. 만약 당신이 마음속의 다른 모든 음성과 앎을 분별하는 법을 배울 수 있고, 앎이 당신을 어떻게 인도하고, 당신 체험에서 어떤 느낌인지를 인지할 수 있다면, 그리고 이 훌륭하고 필요한 인지를 방해하는 모든 두려움과 산만함, 신념들을 떨쳐낼 수 있다면, 앎은 이 세상의 모든 중요한 것에서 당신을 보호하고, 인도할 것이다.

부처는 해를 끼치거나 해를 끼치려 하지 않는 비폭력의 중요성을 가르쳤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세계의 모든 종교가 분명히 이해된다면, 비폭력은 모든 종교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종교들은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많은 것이 더해졌고, 많은 것이 바뀌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대단히 많은 것이 문화와 정치, 인간의 신념과 결합되었다.

부처는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며, 그래서 부처의 가르침은 내적 성장의 역할이 되고, 길이 되었다. 그런데 이 내적 성장은 현대에도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앎은 이성의 영역과 범주를 넘어, 표면 마음 아래 깊은 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 앎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어떻게 이 앎에 도달할 것인가? 어떻게 당신 자신의 책략이나 다른 사람들의 설득과 영향력에서 이 앎을 분별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필수적인 질문이지만, 당신은 길을 모르므로, 스스로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하지만 신은 당신 내면에 길을 심어 놓았다. 그리고 세상을 위한 신의 새 메시지는 순수하고 분명하게, 모호함 없이 그 길을 복구할 것이며, 과거를 참조하지 않고, 또 과거의 이해나 예언을 실현하려고 하지 않고 그 길을 복구할 것이다.

신은 이런 것들에 얽매이지 않으니, 당신도 이런 것들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그래야 당신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당신 삶을 회복할 수 있으며, 당신을 세상에 오게 한 진짜 목적을 되찾을 수 있다. 이 목적은 신만이 알며, 당신 내면에 있는 앎만이 당신이 온 목적을 발견하도록 이끌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모든 종교의 기원을 안다면, 또 어떤 종교도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거나, 모든 사람을 인도할 수 없으며, 어느 한 가르침이나 교사가 모든 사람을 위한 가르침이나 교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당신은 시간이 흐르면서 이 세상에서의 신의 계획과 활동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이러한 이해가 없다. 그들은 자신의 종교가 유일한 종교이거나 마지막 종교, 더 나은 종교라고 생각하며, 다른 종교들을 비난하고, 심지어 의견이 다른 종교들을 파괴한다. 이것은 앎이 없는 종교이다. 이것은 신의 의지와 계획과는 무관한 종교이다. 이것이 바로 인류가 이 신성한 의도를 변질시키고 모독하기 위해 행한 것이다.

부처는 천사의 회중의 인도를 받았지만, 이 사실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신들(gods)과 신비한 힘,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상과 추측에서 벗어나서, 제자들과 그의 말을 듣는 사람들을 새로운 이해의 영역으로 데려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이 누구인지 깨달은 뒤, 그에게 돌아가 가르치라고 말한 것은 회중이었으며, 그는 자기 역할을 유감으로만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에도 진실이었고, 지금도 진실이다. 마찬가지로 당신에게도 진실일 것이다. 세상을 떠나 자신을 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리 생각하면, 당신은 마치지 못한 자신의 임무, 끝내지 못한 자신의 일, 인지하지 못한 진실과 함께, 다시 돌아올 뿐이기 때문이다.

신의 계획은 단순히 당신에게 행복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선을 위해 당신을 쓰는 것이다. 그 일은 당신에게 이 세상에서 다른 어떤 것도 제공할 수 없는 일종의 행복과 만족을 줄 것이다. 당신 삶에 대한 올바른 느낌, 더 큰 진실과 목적과 의미와 방향의 느낌을 줄 것이다.

당신이 추구하는 것이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당신에게 이런 것들을 줄 수 없다. 앎의 인도를 받지 않는다면, 남을 돕고자 하는 당신의 소망조차도 완전히 효과적이기에는 너무 많은 독선이 담겨 있을 것이다.

부처는 신의 새 메신저와 함께 서 있다. 이 메신저는 인간 가족에게 지금까지 전해진 것 중 가장 방대한 계시를 받기 위해 세상에 파견되었으며, 이 계시는 전 세계적으로 상호 의존하는 시기, 교육받은 세계, 즉 지구적 문제와 딜레마, 위기를 인식하는 세계에 지금 전해지고 있다.

그가 요청받은 것은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세상에서 물러나 자신을 정화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메신저이기 때문이다. 메신저는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그리고 그의 모든 준비는 메신저가 되어, 전하기로 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었다.

부처는 메신저이었으며, 단순히 궁극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한 개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가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것으로는 이곳 지구에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할 수 없었다.

이것을 당신의 이해로 삼으라. 신은 당신을 쓸모 있게 만들고 싶어 하며, 큰 계획의 일부, 세상에서 큰 은총의 일부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것은 궁극적인 자기 정화가 아니다. 당신은 항상 오류를 범할 것이고, 항상 어려움을 겪을 것이며, 당신 마음이 아주 맑더라도, 항상 주기적으로 의심을 가질 것이다.

신의 큰 계획은 당신의 정화가 아니다. 오직 신만이 그것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은 단계를 밟아야 하고, 당신이 해야 할 일인 연습과 책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 일을 해야 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기적을 기다리며 빈둥거려서는 안 된다. 마치 신이 당신의 꼬마 심부름꾼이나 되는 것처럼 당신을 위해 일해달라고 끝없이 신에게 간청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당신의 책임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건강을 등한시하고, 관계를 등한시하고, 세상에서 당신 일의 중요성과 영적 성장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 큰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 이 변화는 전 세계를 변화시킬 것이다. 기후가 변할 것이고, 물질 현실이 변할 것이다. 국가 경제와 사회에 일어나는 격변은 인간 가족이 이전에 본 그 어떤 것보다도 더 클 것이다.

지금은 한가하게 시간을 보낼 때가 아니다. 지금은 취미와 환상과 로맨스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은 부름이 매우 긴박하게 울려야 할 때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변화의 큰 물결에 압도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당신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 부처의 예가 당신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러니 그의 업적, 심지어 그의 실수조차도 당신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모든 메신저에게 마찬가지이다. 비록 당신이 그렇게 큰 책임을 지는 역할을 맡는 식으로 부름을 받지 않더라도, 그들의 삶과 시범은 당신과 관련이 있다. 당신은 자신의 방식이 아닌 방식으로 책임을 지기 위해 여기 왔다. 그 책임은 당신 내면에서 당신이 준비되고, 성실하고, 진지해지기를 기다리며, 그런 책임을 지는 데서만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이 이해하기를 기다린다. 오직 이 책임을 지는 것만이 여전히 신과 연결된 당신의 영원한 부분인 당신의 깊은 마음에서 세상 마음을 분리시키는 간격을 좁힐 수 있다.

부처는 이제 회중에서 그의 추종자들을 지켜본다. 그는 그들의 큰 실수와 큰 분열을 가슴 아파한다. 하지만 그는 그의 조언을 받아들일 수 있는 특정 개인들을 제외하고는 간섭할 수 없다. 어떤 면에서는 지금 그의 임무는 그가 지구에 있었을 때보다 더 어렵다. 그것은 모든 메신저에게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이 창시한 것을 지켜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바로 어려움이 있다.

종교가 권력과 지배력을 추구하기 위해 이용되면서, 수 세기 동안 기독교가 전쟁과 집단 학살, 학대의 도구로 이용되는 것을 예수가 보며 겪어야 했던 것을 당신은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것을 상상해보라. 그는 일어나는 모든 일과는 별개로, 지복 속에서 살고 있지 않다. 그는 지켜보고 있으며, 그를 도와주는 이들이 많다.

신은 세상에 있는 신의 힘과 현존과 계획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이해를 가져온다. 이전에는, 오직 실질적 입문자, 위대한 신비주의자, 영감을 받은 훌륭한 교사들만이 그러한 것들을 볼 수 있었으나, 이제는 당신과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류가 저지른 큰 실수들, 끝없는 갈등을 영속시키는 큰 실수들을 이 세상을 돌보는 방식에서 바로잡을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인류는 이제 단지 숭고한 원칙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 문명을 구하기 위해서도 단결해야 한다. 인류 문명은 내적 붕괴의 위험과, 인간의 권위를 해칠 계획으로 이미 이곳에 와 있는 우주 세력에 예속되는 위험에 처해 있다.

당신은 지평선 너머로 오는 커다란 위협, 심지어 이 순간에도 은밀하게 뻗치고 있는 큰 위협을 알지 못한다. 욕망과 두려움, 자신의 문제에 사로잡힌 삶을 사는 당신은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고, 어떻게 변했는지 알지 못한다.

여기서 부름은 강력하고 긴급하다. 응답하는 능력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당신의 접근 방식이 얼마나 겸손하고 진지한가에 따라 당신과 당신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부처와 예수, 무함마드는 메신저 마샬 비안 서머스와 함께 서 있다. 그는 세상을 위한 새 계시를 받기 위해 신에게서 파견되었고, 그들과 같은 회중 출신이므로, 그들은 그와 함께 서 있다. 그는 그들의 일을 실현하고 있고, 명백하게 밝히고 있으며, 또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도전에 직면하면서 인류 진화의 다음의 큰 단계로 그들의 일을 옮기고 있다.

새 메신저를 반대하는 데 당신의 종교를 이용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이 자신의 종교가 무엇을 의미하고, 누가 그 종교를 창시했고, 그 이후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등 자신의 종교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확실한 신호일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들이 메신저들의 원천을 이해한다면, 종교 전쟁은 종식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세상에서 엄청난 폭력과 이유 없는 잔학 행위가 종교 전쟁에서 행해지는 것처럼, 종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순전히 권력과 복수를 위해서라는 것을 당신은 알 것이다.

그래서 신은 앎길을 알려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오직 앎길만이 개개인을 회복시킬 수 있고, 종교 안팎에서 종교적 현존과 힘의 진정한 부름과 끌림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신앙이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그것은 똑같은 부름이다. 응답하라는 부름, 준비하라는 부름, 앎으로 가는 계단을 밟으라는 부름, 비난과 증오를 멈추라는 부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삶을 회복해야 한다는 부름, 당신의 표면 마음 아래, 당신 내면에 사는 앎의 힘과 현존에 당신 마음의 방향을 다시 맞추라는 부름이다.

여기에서 만약 당신이 소용돌이치는 표면 마음을 벗어나고자 한다면, 부처가 가르쳤던 단순함과 초점, 내적 방향이 중요해진다. 신의 새 계시는 아주 오래전 부처에게서 유래된, 내적 명료성과 고요에 관한 연습들을 현대에서 수행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형태로 세상에 가져온다.

그것은 단순히 종교 관행과 원칙, 종교 기념일, 종교 예배 형태를 준수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가 강조한 것은 당신을 내면 깊이 데려가는 것이었으며, 그 주안점이 세상을 위한 신의 새 계시에서도 지금 장려되고, 반복되고, 울려 퍼진다.

왜냐하면 오직 앎만이 당신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이 앎을 당신에게 심어 두었다. 오직 앎만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앎과 함께하면, 전쟁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앎이 다른 누군가의 앎, 즉 신에게서 나오며, 완전히 통일되고 조화로운 창조물에서 나오는 앎과 불일치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세상의 불만과 문제들은 증오나 비난 없이, 현실적이고 실용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다. 종교는 전쟁의 도구나 기치로 사용되지 않을 것이다. 성스러운 전사도 없고, 성스러운 전쟁도 없기 때문이다. 하늘의 눈으로 보면, 종교가 전쟁의 명분으로 이용되는 것은 혐오스러운 일이다. 당신이 이렇게 하는 것보다 신에게 더 큰 죄를 지을 수는 없다.

만약 우리의 말을 이해한다면, 당신은 우리의 말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말은 당신이 처음에 알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음성, 우리의 현존, 우리의 말, 세상에 있는 메신저, 제공되는 앎으로 가는 계단은 모든 사람이 연습하고 공부할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은 아주 본질적이고, 이 시기와 다가오는 시기를 위해 아주 완벽하다. 종교를 꼭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종교에 삶과 영, 목적과 의미와 화해의 필요성을 불어넣으려는 것이다.

이것이 없다면, 종교는 죽게 되고, 마구와 멍에가 된다. 그리고 징벌이 된다. 여기에서 심판의 날이 생기고, 지옥과 저주가 생기며, 복수심에 불타는 신이 생긴다. 인간의 이해와 종교에 대단히 만연한 이 모든 오해가 여기에서 드러나며, 그들 실수의 근원이 밝혀진다.

신의 계획은 모든 사람을 구하는 것이며, 오직 신만이 이것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안다. 그리고 당신이 따르도록 신이 당신 내면에 심어 놓은 앎이 제공하는 것으로만 당신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이 앎을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이 앎을 발견할 수 있도록, 신은 앎으로 가는 계단을 가장 단순한 용어로 제시했다. 앎으로 가는 계단은 번역하기 아주 쉽고, 모든 언어로 이해하기가 아주 쉬우며, 아주 분명하고, 일관되지만, 그 지혜와 힘은 제대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아주 깊다.

만약 당신이 세상에서의 신의 힘과 현존과 계획을 이해할 수 있다면, 당신은 현재 존재하는 세상의 큰 종교들과 신의 새 메시지 사이에 아무런 불일치가 실제로 없음을 알 것이다. 이것은 단지 해명일 뿐이며, 인간의 이해와 신념과 가정에 일어나야 하는 교정일 뿐이다. 이 해명과 교정이 없다면, 종교는 단순히 각각의 종파가 여기서 신의 계획과 목적을 진정으로 대표한다고 주장하며 서로 싸우고 서로를 파괴하려고 함으로써, 인류의 큰 붕괴의 일부가 될 것이다.

종교는 오늘날 문제의 일부이지만, 원래는 세월이 흐르면서 큰 해결책의 일부이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해결책을 알려면, 당신은 우리가 지금 여기서 말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불평을 그만두라. 맹신을 버리라. 종교가 무엇인지, 신이 어떻게 일하는지, 복원이 무엇인지 안다고 주장하기를 그만두라. 왜냐하면 당신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인간의 믿음과 추정을 뛰어넘는다. 오만하면서 동시에 무지한 그런 사람이 되지 말라. 어리석게 굴지 말라. 몇 가지 단순한 믿음만 있는 쉬운 길을 찾지 말라.

모든 종교 가르침은 시공간에서 상대적이다. 오직 신만이 영원한 계획을 알고 있다. 신에게 가는 바로 이 부름이, 과거의 모든 메신저와 공명하고, 과거 모든 종교의 핵심적 의미와 공명하면서, 다시 새롭게 전해지고 울려 퍼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모두 자유가 드물고 거의 알려지지 않은 우주에서, 자유와 자결권을 지닐 수 있는 위대한 문명을 준비하고 건설하기 위한 신의 계획의 일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