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04월 25일
미국 콜로라도 보울더에서
마샬 비안 서머즈가
받다
오늘 우리는 메신저를 이해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다.
세상에 신의 새 메시지가 있다는 말을 받아들이고 환영할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새 메시지의 필요성을 안다. 그들은 기존 종교들이 그 종교들 사이에서나 그들 종교 내부에서 어떻게 분열되었고, 서로 싸우게 되었는지 안다. 또한 종교적 극단주의와 그 극단주의가 인류 역사에 끼친 그 파괴적인 영향을 알며, 종교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 심지어 오늘날에도 세상에서 자행되는 그 폭력을 안다. 그래서 그들은 “그래, 바로 지금 신의 새 메시지가 있다면, 아주 좋을 거야.”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마저도 이 목적으로 세상에 실제로 파견된 사람이 그들 사이에 있다는 것, 즉 메신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큰 어려움을 느낄지 모른다. 그들은 이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 사람이 새 메시지에서 말하는 사람이라면, 그들은 그를 공경하고 존경하며 받아들여야 하거나, 아니면 계시가 세상에 전해질 때, 또다시 계시를 거부하는 이들 편에 서야 할 것이다.
계시는 모두를 곤혹스럽게 하며, 모두에게 이의를 제기한다. 물론 여기에는 당연히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연습들이 있다. 이것들은 받아들이기가 매우 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들 사이에 메신저가 있다는 것은 어떤가?
이것은 많은 사람에게 상당히 어려운 일일 것이며, 심지어 신의 새 메시지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할 만큼 몹시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들은 메신저를 비난하거나 거부하고 싶어 하면서, 메신저에게만 관심을 둘 것이다. 혹은 어쩌면 전달의 매개체 역할만을 하는 우편집배원처럼 메신저가 그저 메시지만 전달하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으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신의 메신저들은 지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이 실행하여 보여준 것이나 개인적 가르침은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심지어 많은 사람이 예찬하였다. 그러니 당신은 신의 메신저를 단순히 우편을 배달하는 어떤 사람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이 계시는 그 자체로 지금까지 인류에게 전해진 것 가운데 가장 큰 것이며, 가장 조리가 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지금 더 많이 교육받은 세상, 문맹에서 벗어난 세상, 국제 통신과 국제 무역이 가능한 세상을 상대하고 있고, 신의 새 메시지가 바로 이 순간 전 세계로 전파되고 있는 것처럼, 메시지가 전 세계로 전파될 수 있는 세상을 상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의 새 메시지는 한 종족이나 한 지역을 위한 메시지가 아니며, 신이 작은 한 그룹에게 역경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오랫동안 한두 가지 특정 영적 수행이 행해진 세상의 한 지역을 위한 것이 아니며, 단순히 한 종교만의 관점에서 새로운 이해를 가져다주는 교정본이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이것은 전 세계를 위한 메시지이다. 신의 새 메시지는 한 민족이나 한 국가, 한 종족, 한 그룹에 특별히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 당신이 세상 어느 지역 출신이든,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상황이 어떠하든, 당신에게 동등하게 말한다.
신의 새 메시지는 한 민족을 탄압에서 구출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며, 한 그룹을 신천지로 안내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새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세상을 초월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그 대신 모든 이들이 궁극적으로 세상에 온 큰 목적인 세상에 머물며 봉사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왔다.
그러면 당신은 이처럼 기념비적인 이해를 가져온 메신저를 어떻게 대하는가? 그가 가져온 이해는 이곳 한 행성에서 나온 고금의 지혜뿐만 아니라, 우주 큰 공동체 삶에서 나온 지혜를 담고 있다. 전에는 이런 지혜를 가져올 필요가 없었으므로, 이런 일이 결코 없었다. 하지만 인류는 이제 우주의 삶이라는 위기를 눈앞에 두고 있으니, 인류의 가장 크고 중대한 도전인 우주의 삶과 접촉에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메신저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정보소비자들이 소비하도록 이곳에 정보를 전하려고 선택된 어떤 사람이 아니다. 새 메시지는 인류 역사의 흐름을 바꾸도록 되어 있는 계시이며, 또 사람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이해를 주도록 되어 있고, 자신과 세상, 인류의 운명과 지구의 미래를 바라보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주도록 되어 있는 계시이다.
당연히 그런 계시를 전하는 메신저는 대부분의 사람이 정직하게 자신이 이해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이해를 가진, 세상에서 비범한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 사실상, 그는 계시의 매개체이므로,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하다. 왜냐하면 다른 누구도 계시를 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다.
신은 수 세기 동안에 한 계시만을 보내며, 한 계시만으로 충분하다. 만약 신이 많은 계시를 보내면, 서로 경쟁하는 계시들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 반목할 것이다. 많은 논쟁이 있을 것이고, 변질과 결탁의 위험이 매우 클 것이다.
그래서 한 메시지와 한 메신저만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들이 어떤 것을 해야 하고, 어떤 것을 직시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신이 자신을 돕기를 바란다면,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신이 당신을 돕기를 바란다면, 당신은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시지와 메신저는 세상에서 큰 변화의 동인이 되며, 현재 돌아가는 상황에서 이익을 얻는 이들에게는 이런 변화가 위협적이고 불안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들은 그 변화에서 빠져나오고 싶거나, 적어도 그 변화를 하찮은 것으로 만들고 싶거나, 할 수만 있다면 없애고 싶을 것이다. 삶에서 꼭 필요한 것이 훨씬 더 많은 이들은 어쩌면 이 변화를 복원과 자율권 회복으로 볼 수도 있으며, 이 변화는 실제로 그러하다.
세상에 메신저를 보내 다시 말하는 신에게 사람들이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는 큰 의문이며, 미지의 것이다. 심지어 천사의 무리조차 이것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한다.
이것은 응답할 수 있는 사람 각각의 내면에 있는 인간의 가슴에 대한 시험이며, 그들의 성실성과 정직성의 시험이다. 많은 사람은 “음, 신은 단순히 나를 위해 내 삶이 나아지게 하려고 여기 있으며, 나는 그저 믿기만 하면 돼.”라고 생각하며, 종교 이념이나 가르침, 교회나 종교기관의 이론을 믿을 것이다. 그들은 신을 자신의 봉사자로 생각한다. 즉, 자신이 잘못한 것을 바로잡아주고, 자신이 투자한 것의 가치를 높여주고, 삶의 곤경에서 자신을 구출해주기 위해 여기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해줄 때만 믿을 것이다. 마치 신이 그들에게 신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혼자서는 이것을 느껴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당신이 이해해야 하는 것은 신의 새 계시가 단순히 세상에 주는 선물과 축복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이 계시는 선물이고 축복이지만, 또한 인류에게 시험이기도 하다.
인류가 응답하지 않더라도, 신은 인간 가족을 벌하지 않겠지만, 인류는 주변 우주로부터 방해와 개입에 직면하면서 쇠퇴하는 세상에 남아 있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이 처한 곤경의 진정한 본질을 알아차릴 수도 없고, 응답할 수도 없고, 사람들에게 서로 협력하도록 격려해줄 수도 없을 것이다. 이 큰 두 도전에 부응하려면, 이 협력은 꼭 필요할 것이다.
신은 벌하지 않는다. 신은 그냥 뒤로 물러난다. 그런데 이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끔찍한 일이다. 당신은 물론 정말 필요한 때에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어려움과 비극을 대처하려고 많은 것을 신에게 기도할지도 모르며, 이것은 전적으로 이해할 만하다. 그리고 신은 이 기도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은 이 기도에서 물러설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을 위한 이 큰 계시가 이곳에서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당신이나 세상 자체를 위해 신이 다른 무엇을 해주겠는가? 당신은 큰 현존이 축복해주는 것을 여전히 느낄 수도 있지만, 인류는 쇠퇴와 붕괴의 길을 따를 것이며, 편의주의나 단기간의 이득과 이익에만 집착하여 맹목적이고 어리석으며 충동에 내몰릴 것이다. 인류는 자신 앞에 놓인 비참한 여행에 대해 알지 못하며, 명백한 진실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메신저가 중요해진다. 사실, 그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와 이 계시가 없다면, 인류는 심각한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다. 지구는 고갈되고 있으며, 인류는 주요 자원들을 바닥낼 것이다. 비밀리에 지구에서 작업하는 어떤 수탈 종족들에 의해 개입이 진행되고 있다. 당신은 이것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리고 이것들을 처리할 힘과 헌신의 노력이 누구에게 있을 것인가?
쇠퇴하는 세상에서 사는 법을 당신에게 가르치고, 큰 공동체 삶에 당신을 준비시키기 위해, 또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개입에 대해 당신에게 경고하고, 모든 개인, 모든 인간의 가슴속에 신이 심어 놓은 앎의 힘을 얻는 데, 모든 신앙·국가·부족의 사람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신이 세상에 새 계시를 보낸 것은 이처럼 큰 도전이자 어려움이다.
여기에는 숭배해야 할 어떤 영웅도 없으며, 최후의 심판일도 없다.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말라.
점점 더 커지는 큰 위기, 인류 전체가 과거에 겪어본 그 어떤 것보다 더 큰 위기가 세상에 있다. 신은 이것을 알므로, 주의와 경고를 보내고 있고, 축복과 준비를 보내고 있다. 자기 집착에서 빠져나오라. 보려는 용기와 가슴이 있다면, 이때 당신은 더 큰 명료성을 가지고 큰 그림을 보기 시작할 수 있다.
메신저를 거부할 사람은 자신의 기존 이해가 잘못된 것으로 의심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들, 자기 생각을 바로잡고 삶에 접근하는 자세를 바꿔야 할지도 모르다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다. 이 점에서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이미 큰 어려움 속에 있으며, 세상에 그다지 투자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메신저를 거부하는 이들은 자신의 투자와 철학과 신학,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보호하려고 거부할 것이다. 그들은 신이 이런 것들을 존중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신은 이러한 것들을 중히 여기지 않는다. 당신은 모든 우주의 주인이 몇 안 되는 세상 사람들의 명성에 관심을 가질 것으로 생각하는가?
신은 심지어 새 계시가 과거 예언과 연관되어 있는지조차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과거 예언은 대체로 인간이 지어낸 이야기이거나, 역사 속에서 변질되고 부적절하게 적용되면서, 인간이 지어낸 이야기가 되었다. 예언은 그 시대를 위한 메시지이지, 모든 시대를 위한 메시지가 아니며, 모든 사람이나 모든 장소, 모든 상황을 위한 메시지가 아니다. 메신저를 거부할 사람들은 계시를 두려워한다.
그들은 그들 사이에 이런 중요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두려워하며,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에 의심을 품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자신의 가슴을 따르기를 두려워한다. 그 대신 그들은 마음의 집착이나 자신의 믿음, 주장, 정치단체 등, 개개인을 사슬에 묶어두는 모든 것, 내면의 현존에 응답할 수 없게 하는 모든 것을 따를 것이다.
당신은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것을 알겠는가? 이 계시는 크고 작은 모든 것, 축복받거나 변질된 모든 것에 빛을 비춘다. 이 계시는 모든 수준에서 변질을 드러낸다. 마치 숨어 있는 모든 이들이 계시의 큰 빛에 드러나게 되는 것과 같다. 그들의 상태는 실제 있는 그대로 보인다. 그들의 약점이 노출되고, 그들의 타협이 드러난다.
진정으로 정직하고 용기 있는 이들만이 이러한 것들을 기꺼이 직시할 것이다. 그들은 신과 자신의 연결을 되찾고 이곳에 온 큰 목적을 되찾기 위해, 자신의 혼에 절실히 필요한 것을 알아보면서, 이것들을 기꺼이 직시할 것이다.
인류 문명에 닥친 큰 위험을 알아차린 이들만이 이 계시의 의미와 힘과 은총을 목격하고 스스로 탐색해볼 수 있도록, 자신의 걱정이나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위대한 메신저들 모두가 세상에 들어와서 마주해야 했던 문제인 역경과 부정직, 변질과 오해, 종교 남용과 정치적·경제적 권력 남용 등과 같은 동일한 문제이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지역 관리들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가 반응할 수 있으므로, 이제 이것은 훨씬 더 엄청나다. 새 계시는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으므로, 저항은 새 계시에 어떤 식으로든 도전받는 것을 느끼는 모든 국가와 모든 종교, 모든 정부 등 전 세계에서 올 수 있다. 왜냐하면 새 메시지가 점점 더 강력해지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세상에서 메시지의 효력과 중요성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신저는 아주 짧은 기간에 대단히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다. 이것은 눈앞에 다가온 큰 위기를 고려하면, 꼭 필요하지만, 동시에 저항과 거부가 엄청날 수 있다.
종교들이 그 발원지 밖에서 인정을 받는 데는 몇 세기가 걸렸으며, 통신이 매우 느렸고, 여행과 운송이 매우 느렸으므로, 매우 느리게 퍼져 나갔다. 지금은 버튼을 클릭하는 것만으로 지구 저편에 있는 사람이 신의 계시를 읽을 수 있다.
당신은 이 힘을 알겠는가? 신이 다시 말했다는 것을 일단 알게 되면, 성실한 사람들은 모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 힘은 엄청나다. 왜냐하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 큰 도전에 직면하여 해야 할 것을 알아보는 데, 인류에게 몇십 년이나 한 세기가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자원이 바닥나고 있으며, 시간이 없다. 인류는 과거에 만들어 낸 것을 단순히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어떻게 직면하고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대단히 용감해야 한다.
이때 큰 힘과 큰 용기, 큰 정직이 있어야 하며, 당신이 여기서 다루고 있는 것을 이해하는 데 대단히 명료해야 한다. 하지만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조차 자신의 편견과 관찰력 부족으로 여전히 불리한 처지에 있다. 대학은 앎과 지혜를 실제로 가르치지 않으며, 사람들을 정보와 관점에 몰두하게 만든다. 그래서 당신은 보고, 알고, 상황에 맞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에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선물은 각 개인에게 주어졌으며, 메신저는 이것을 말할 것이다. 당신은 신이 당신 내면에 심어 놓은 앎의 힘을 찾아야 한다. 메신저는 이것을 말할 것이다. 당신은 균형과 정직으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메신저는 이것을 말할 것이다.
당신은 쇠퇴하는 세상에 대비하여 준비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외적인 것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내적인 것을 심지어 더 중요하게 다루며, 신이 당신에게 준 안내의 힘을 알아차리면서, 준비해야 한다. 메신저는 이것을 말할 것이다.
메신저는 대단히 크고 긴요한 것들을 전 세계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한 개인인 당신을 위해서도 말할 것이다. 이것은 일화나 전원적인 이야기로 전하지 않는다. 또 몇 세기에 걸쳐서 인간의 해설로 해명되어야 하는 일이 없도록, 수수께끼 같은 말로 전하지 않는다. 이것은 인지할 기회가 대단히 많아지도록, 단순하고 평이하게, 또 분명하고 직접적이고 대단히 자주 반복하여 전한다. 사람들이 이것을 듣고 적절히 응답할 수 있을 것인가?
당신은 메신저가 단순히 소포를 나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실제로 계시의 일부는 메신저 안에 있다. 그 부분은 말이나 문헌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메신저 안에 있다. 이 점에서 그에게는 입문의 힘이 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노인이다. 그는 아주 오랜 준비와 함께 도중에 많은 어려움을 견뎌야 했다. 그를 받아들일 시간이 얼마 없으며, 그를 받아들이는 이는 누구든 자신이 그와의 교류를 그 순간에 인식할 수 있든 없든, 그 교류에서 축복받을 것이다.
이때 당신은 메신저와 계시 자체, 둘 모두를 상대해야 한다. 당신은 둘 중 하나만을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둘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메신저를 인정하지 않으면, 계시의 과정을 오해할 것이고, 세상에 계시가 있는 의미를 오해할 것이며, 신이 지구에서 어떻게 일하고, 지적 생명체로 가득 찬 우주의 모든 행성을 어떻게 돕는지 계시가 드러낸 것을 오해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당신은 메신저를 영웅으로 만들거나, 신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는 당연히 큰 존경을 받아 마땅하지만, 신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메신저도 신이 아니었다. 메신저들은 그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었을 뿐이며, 그것이 전부이다. 그들은 완벽하지 않다. 그들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계시의 증표이다. 그들은 인간이다. 실제로 찾아보면, 당신은 그들의 오류를 볼 수 있다. 그들이 출현할 때마다, 세상에서 그들의 힘과 현존을 대단히 중요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이 세상에 가져오는 것, 즉 그들이 더 큰 어떤 것의 매개체이자 그릇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주 출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시대에는 그 시대의 선지자가 있으며, 종종 한 사람 이상씩 있지만, 세상에 전해지는 신의 새 계시는 천년에 한 번 정도일 뿐이다. 그리고 큰 변화와 큰 기회, 큰 위험이 있는 시기에만 세상에 전해진다.
만약 지금 우리가 당신에게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당신은 자신이 아주 대단히 중요한 시기, 세상의 매우 중요한 전환점에 세상에 있다는 것, 즉 계시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만약 이것을 알 수 있다면, 당신은 자신을 단순히 갖고 싶은 것들을 얻기 위해 안달하는 사람,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고, 건강과 안전과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안달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다르게 생각할 것이다. 당신은 실제로 이곳에서 자신의 삶에 더 큰 차원과 더 큰 목적이 있으며, 어떤 점에서 보면 이 목적이 직간접적으로 계시의 시대에 사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당신은 천 년이나 이천 년마다 겨우 한 번씩 오는 역사적인 순간에 사는 것과 같다. 이 점에서 당신이 세상에 지금 사는 것은 미래에 사람들이 이 시기에 산 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되돌아볼 만큼 대단히 특별하게 중요하다. 미래 사람들은 “그들은 이 계시를 알아보았는가? 그들은 이 메신저를 알아보았는가?”라고 말할 것이다.
당신은 이 시기에 이곳 세상에 있고, 우리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으니, 축복받았다. 당신은 자신이 얼마나 축복받았는지 모르며, 이것이 당신 삶에 무엇을 의미하고, 당신을 알거나 당신이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다른 이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하늘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대단하고 중요한 축복이자 기회이다. 하지만 하늘이 아는 것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다르다. 또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하늘이 진실하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매우 다르다.
메신저는 저항과 괄시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분명 대변인들이 있을 것이고, 증인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그를 짓밟을 것이고, 그의 현존과 세상에 주는 그의 선물을 없었던 것으로 하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메신저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응답하는 데 도전을 받는다고 말한다. “음, 이 사람은 신의 새 메시지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모르겠다.” 이것은 정직하지 않다. 당신은 가슴속에서 알 수 있으며, 알도록 되어 있다.
사람들은, “오, 메신저는 항상 오며, 세상에는 항상 메신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어떤 것이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싶지 않으며, 정말로 다루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혹은 자신이 메신저가 아닌 것을 질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혹은 모두가 메신저이거나, 메신저들이 여기저기에 있으면서 메시지를 전하는, 대단히 흔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사람들은 상황의 현실을 상대하고 싶어 하지 않으며, 그 현실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들은 충격을 받고 싶어 하지 않으며, 응답해야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또한 계시가 자신에게 주는 도전과 큰 기회를 상대해야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들은 그저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계속하면서, 이런 것들로 괴롭지 않기만 원할 뿐이다.
물론 이것은 모두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정직하지 못한 문제이며, 인간 가족에게 있는 큰 어려움이다. 어쩌면 우주 전역에 있는 어려움이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당신은 메신저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를 신격화하려 하거나, 고귀하고 완벽한 위치에 올려놓으려고 하는 일 없이, 당신은 그가 계시를 전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는 고난과 질병과 반대를 겪으면서, 이 계시를 전하고 있다. 이 계시를 받아들여 계시에 응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든 그를 도와야 한다. 왜냐하면 그 혼자서 이것을 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많은 증인과 지지자가 필요할 것이다.
사람들이 복원을 기도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들은 새 삶을 갖기를 기도하고, 과거의 고통·수치·죄책감·후회에서 자유롭기를 기도한다. 그리하여 선물이 자신에게 오면, 그들은 그 선물을 상대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신을 위한 답이 올 때, 그 답은 너무 크고, 너무 어려우며, 너무 불편하다. 게다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들은 어쩌면 이 계시가 오직 한 사람을 통해서 전해지며, 오직 한 사람만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격분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그들의 평등주의 관점에 반하며, 어쩌면 그들의 민주주의 개념에 반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계시가 어떻게 오는지 혹은 어떻게 오는 것이 좋은지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메신저는 이 모든 것을 직면해야 할 것이고, 지금 직면하고 있다.
그리고 메신저가 또 직면해야 하는 사람은 이 모든 것의 일부가 되기를 원하지만, 도움을 받고 구원받고 보호받기를 원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메시지와 메신저가 자신의 문제와 약점과 무능을 모두 해결해주리라 기대하면서, 그러한 것들을 가져온다. 그런데 사실 이 모든 것은 그들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계시는 이렇게 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길을 제공한다.
그들은 계시에 봉사하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계시에 봉사받기만을 바란다. 어쩌면 초창기에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많아 계시가 그들에게 봉사할지도 모르지만, 모든 이는 공헌자가 되기 위해 세상에 파견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일단 공헌을 할 만큼 건강과 자유를 얻고 나면, 그다음은 그들의 일이고, 그들의 부름이다. 이것 말고는 개인적 성취는 없다. 이것이 진실로 이렇게 되는 것은 바로 당신의 깊은 본성 때문이고, 당신이 온 곳과 되돌아갈 곳 때문이다.
메신저는 이것들을 말할 것이다. 그는 어떤 것을 부수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며, 기관들을 파괴하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또한 사람들의 조직이나 정부, 종교 권위자들을 혹독하게 공개적으로 반대하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그는 은총과 신의 큰 사랑을 가져다주려고 이곳에 왔으며, 사람들이 자신의 깊은 본성에 응답하는 데 필요한 것, 신이 그들을 안내하려고 그들 내면에 심어 놓은 깊은 지성인 앎으로 가는 계단을 밟는 데 필요한 것을 가져다주려고 이곳에 왔다.
그러므로 그는 축복과 자율권과 필요한 것들을 가져온다. 그가 가져온 지혜는 어느 누가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크며, 심지어 메신저 자신이 이해하는 것보다 더 크다. 그래서 아무도 이것을 이해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거짓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말을 듣고 있는 당신에게는 이것이 자신 앞에 놓인 도전이다. 이것은 믿음에 관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음의 집착에 관한 것이 아니라, 혼에 관한 것이고, 당신의 가슴과 깊은 본성에 관한 것이다.
당신의 믿음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이 계시를 거부하는 것은 전적으로 어리석고 오만하다. 왜냐하면 계시는 항상 당신을 현재 이해 너머로 데려가고, 당신이 보지 못했거나 혼자서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당신에게 계시하기 위해, 이곳에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이 내린 정의나 당신의 종교 관념에 맞지 않는다고 이 계시를 거부하는 것은 단지 당신을 들어 올려주고 당신 삶을 회복하고 복원할 수 있는 것에 등을 돌릴 뿐이다. 메신저는 이것들을 이야기할 것이다.
당신은 여기서 받는 도전을 알겠는가? 당신은 신과 거래를 해서는 안 되며, 자신이 정한 조건으로 신에 다가가서는 안 된다. 신이 조건과 요건을 정하며, 기회를 제공한다. 계시는 이곳에 순수한 형태로 전해진다. 즉, 인간에 의한 변질 없이, 다른 이들의 오용 없이, 기관이나 정부 등에 의해 악영향을 받거나 오용되는 일 없이 전해지며, 이곳에 순수한 형태로 있다.
신이 다시 말했으며, 계시가 이곳에 있다. 계시는 순수하다. 하지만 당신은 계시에 정직하고 책임감 있게 응답하려면, 당신 내면에 있는 순수한 것을 발견해야 한다.
이때 당신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메신저를 바라볼 수 있으며, 그가 여기 있는 것에 감사하고, 세상에 그를 파견한 이들에게 감사할 수 있다. 당신이 현재 세상에 있는 것에 감사하라. 또 그가 세상에 있는 것이 당신 삶에 의미하는 것, 즉 당신에게 가져다주고, 당신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가져다주는 해답과 명확성, 은총과 기회에 감사하라.
많은 사람이 자신을 위해서, 또 사랑하는 사람들과 전 세계를 위해서 복원과 회복을 기도한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복원이 지금 오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금 오는 것은 너무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 복원은 지금 이곳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불편하고, 도전적이며, 경이롭다.
그 복원은 당신에게 당신 내면에 있는 강한 것과 약한 것을 보여주고, 이끌어야 할 것과 따라야 할 것을 알려준다. 이 복원을 통해, 당신의 온전함과 존엄성, 또 세상에 온 큰 목적이 당신에게 회복된다. 왜냐하면 이 복원은 신의 선물이지, 인간의 창안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메신저를 존중하고, 어떤 식으로든, 당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를 도우라. 자신의 큰 역할에 대비하여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라. 당신은 현재 준비되지 않았다. 준비가 전해진 것에 감사하고, 이때 세상의 지혜가 당신을 도울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세상의 타락과 비극이 당신에게 준비의 절실한 필요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라.
감사하라. 왜냐하면 감사하는 마음에서 당신은 자신의 가슴을 알 것이고, 아주 오래전, 당신을 이곳에 파견한 이들을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