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received by
Marshall Vian Summers
on 7월 2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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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7월 23일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마샬 비안 서머즈가
받다

천 년에 한 번꼴로 새 메신저가 세상에 파견된다. 그리하여 인류 발전의 다음 단계를 위해 인류를 준비시키고, 전에는 일어난 적이 없는 큰 위험을 인류에게 경고하며, 현재와 미래에 인류가 직면해야 하는 것과 극복해야 하는 것에 인류를 준비시킨다.

신의 계시는 드물고, 오래 지속한다. 신의 계시가 이곳에 오는 것은 인류 스스로 알 수 없는 것을 알려주고, 세상에서 꺼져가는 영성에 다시 불을 붙이고, 종교적인 믿음과 명령들의 억압과 무게 아래에서 잠자고 있는 종교 정신에 다시 활기를 주기 위해서이다.

지금 인류는 전에 직면해야 했던 그 어떤 것보다 더 큰, 가장 큰 도전들에 직면하고 있다. 인류는 쇠퇴하는 세상, 즉 자원이 감소하는 세상, 인류가 미래 세상에서 생존하려면 다른 방식으로 적응해야 할 만큼, 환경이 심각하게 남용되고 파괴된 세상에 직면하고 있다. 또한 나약하고 분열된 인류를 이용하고자 이곳에 온 우주 종족들의 개입에 직면하고 있다. 전에는 인간 가족 전체가 이토록 도전받은 적이 결코 없었다.

인류는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또 인류 진화 그 자체로 인해, 이 큰 문턱에 도달했다. 머지않아 인류는 주변 우주로부터 관심을 끌 것이며, 개입이 뒤따를 것이다. 머지않아 인류가 지구에서 살아가는 데 이롭지 않는 쪽으로 세상이 스스로 변하기 시작할 만큼, 인류는 자연 유산을 고갈시킬 것이다. 결국 인류는 자신의 무모함, 폭력, 갈등,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진화의 더 성숙한 단계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지금 바로 이 환경 속으로, 이 시기와 이 시대를 위한 선지자인 이 메신저가 파견되었다. 이 시대는 엄청난 격변과 혼란이 있을 것이고, 인류가 변하는 행성에 적응해야 할 때이며, 지적 생명체로 이루어진 우주 큰 공동체에 항상 있었고 지금도 존재하는, 현실에 직면해야 할 때이다.

이 현실로부터 도망갈 곳은 없다. 환상이나 부정으로 도망가거나 인간의 이성과 선호 뒤에 숨는 것은 인류를 더 취약하게 할 뿐이며, 당신이 변하는 세상을 인식하고 거기에 적응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 뿐이다.

메신저가 파견된 것이 바로 이 상황이며, 그의 예언은 창조주에게서 온 예언으로, 인류를 위한 큰 경고이고, 인류를 위한 큰 축복이며, 미래를 위한 큰 준비, 인류 스스로 제공할 수 없는 준비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인류는 구제받고 있다. 하지만 이 선물을 알아볼 것인가? 메신저를 알아볼 것인가? 이 경고에 주의를 기울일 것인가? 이 축복을 받아들일 것인가?

마치 인류가 가장 큰 고난에 직면할 때, 신이 인류에게 더 이상 해줄 말이 없는 것처럼, 많은 사람은 신이 인간 가족에게 말하는 것을 끝마쳤다고 느끼며, 더 이상의 계시는 없을 것이고, 메신저는 더 이상 세상에 파견되지 않을 것으로 느낀다.

그러나 이것은 앞을 못 보는 것이며 어리석은 것이다. 신이 무엇을 할지,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추측하는 것은 오만하다. 당신은 경전 뒤에 숨어서는 안 된다. 당신은 과학이나 합리성 뒤에 숨어서는 안 된다. 당신은 뒤를 보고 있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수평선 너머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고, 계시의 시대에 있음을 보려면, 당신은 이제 앞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메신저는 파견되었다. 그는 지금 세상에 있다. 그는 슈퍼맨이 아니다. 그는 많은 군중을 위해 기적을 행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려고 공연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의 선물은 깊고 풍부하며, 더 심오하고 오래 지속한다. 그는 선풍을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다. 그에게는 세상 누구에게도 없는 선물이 있다. 그는 이 시대의 선지자이다.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당신은 자신이 새로운 세상, 새 삶, 새 계시와 같은 전적으로 새로운 어떤 것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이전 믿음과 가정들에 매달릴 것이다.

지금까지 신이 세상을 위해 계시를 주었을 때마다, 똑같은 이유로 계시는 저항받았고, 부정되었으며, 비난받았다. 이와 똑같은 마음에 의해서, 신의 새 메시지는 비난받고 매도당하며 불신받을 것이다.

이것은 물론 인간에게 흔히 있는 부정의 문제이다. 이것은 약간의 확실성과 지혜를 가지고도 현재와 미래에 전혀 응답할 수 없는, 과거에 사는 사람들의 문제이다.

미래는 당신에게 달려있다. 20년이 지나면, 세상은 알아볼 수 없게 될 것이다. 당신은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으며, 알아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인류에게 비상사태이다. 왜냐하면 오직 비상사태와 큰 필요만이 신이 세상에 새 계시를 보내도록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 계시는 인류의 약점과 무지, 인류의 믿음과 편견을 드러낼 것이고, 신의 뜻을 안다고 하는 인류의 고집을 드러낼 것이다. 인류는 합리성 뒤에 숨을 것이고, 경전 뒤에 숨을 것이며, 거절과 부정과 야망 뒤에 숨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다가오는 시기는 인류가 애써 노력한 결실이다. 기만과 정복, 탐욕과 야망, 세상의 남용에 대한 쓰디쓴 결실이다. 자신의 열정과 야망을 조절하지 못하고, 인구를 조절하지 못하는 인류,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지금 당장 모든 것을 다 써버리는 인류는, 자연 유산이 고갈되지 않고 무한히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그 유산을 쓸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적응하고 살아남을 것인가? 또 오직 자신의 소망과 환상만을 투사하면서, 아는 바가 전혀 없는 주변 우주에서 무엇을 직면할 것인가?

인류는 문명을 보존하기 위해 협조하고 통합할 수 있도록, 어떻게 힘과 헌신을 불러일으킬 것인가? 비인간이고, 인간 정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큰 공동체 삶에 인류는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우주에서 많은 이들이 선물과 비밀 계획을 지니고 올 때, 인류는 어떻게 적과 친구를 구별할 것인가? 당신은 물론 사람들 개개인이 자신을 이 세상에 오게 한 진정한 목적, 즉 자신의 이성과 생각과 계획과 목표 너머에 존재하는 목적을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종교의 정수, 종교의 근본 가르침과 목적을 끌어내도록 누가 종교를 정화할 것인가? 누가 옥석을 가려낼 수 있는가? 지금 이해할 수 있는 그 어떤 것과도 다른 우주로 진입하는 큰 문턱에 인류가 있다는 것을 누가 볼 수 있는가?

당신이 정직하다면, 당신에게는 이 질문들에 답이 없음을 알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참된 길과 그 길을 따르기 위한 힘을 어떻게 찾을지에 대한 답조차 없음을 알 것이다. 현재 당신에게 찾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는 소수의 달인과 그보다 더 소수의 교사가 있지만, 그들은 인류의 미래와 세상에 다가오는 큰 변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여기서 당신은 겸손해야 하고, 자신에게 대단히 정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할 것이고, 실제로는 아무 기반도 없는 가정에 의지할 것이다.

당신은 메신저가 신의 새 메시지를 받느라 수십 년간을 조용히 있다가, 은둔에서 모습을 드러낼 때, 이 모든 것을 볼 것이다. 당신은 부정과 조롱을 볼 것이고, 불신과 거부를 볼 것이다.

사람들은 신이 지금 무엇을 계시할지 두려워하면서, 자신의 기존 종교에 매달릴 것이다. 이 모든 부정과 거절 밑에는 두려움이 있다. 삶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변화에 대한 두려움, 계시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사람들은 이제 신이 다시 말할까 두려워할 만큼 그들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가혹한 행동들을 대단히 많이 저질렀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자부심과 가정과 믿음 뒤에 이 두려움을 숨길 것이다. 또한 그들의 의사당과 사원, 그들의 절과 교회에 숨을 것이다.

과거 위대한 메신저들보다 현재 이 메신저를 더 잘 받아들일 가망성은 없다. 그가 가진 장점은 그의 음성이 전 세계로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이고, 유리한 점은 신의 새 메시지를 순수한 형태로 받는 데 25년을 보낸 것이다. 새 메시지는 한번 알려지면, 멈출 수 없다.

이 메시지의 힘과 지혜는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며, 개개인의 가슴과 혼의 가장 깊은 수준에서 공명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의 가슴과 혼을 알지 못한다면, 이 메시지는 진정한 응답자를 찾지 못할 것이다.

인류는 뉘우쳐야 하고, 변화해야 한다. 인류는 무모하게 자멸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럼으로써 스스로 지구에 가하는 파괴적인 행동에 취약할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오는 개입과 조종에도 취약할 것이다. 지구는 정복할 필요가 있을 만큼 대단한 가치가 있으므로, 인류의 탐욕과 무지와 미신을 이용해서, 지배하려는 시도는 미묘하고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이 선지자는 바로 이 큰 취약성을 말할 것이다. 그는 말과 메시지를 받았다. 메시지는 매우 크고 방대하며, 인간이 지어내거나 순수한 메시지를 조작할 여지가 전혀 없을 만큼 매우 포괄적이다.

그러나 시간이 걸릴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신이 자신 내면에 심어 놓은 깊은 지성인 앎에 무감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몰리고, 우왕좌왕하며, 생존하거나 욕망을 실현하려고 지나치게 노력하고, 일상생활의 연극에 사로잡혀, 자신에게 무감각하다.

그러므로 첫 번째 응답자들은 마음의 동요를 느끼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이미 부름을 받았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부름받고 있는지 모른다. 그들은 자신에게 더 큰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을 찾을 수 없어서, 불만을 품고 괴로워한다. 그들은 자신의 문화나 종교, 가족, 관념 안에서 그것을 찾을 수 없으며, 정치나 사회운동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들은 신의 큰 힘에 동요하고 있다. 그들은 계시에 대비하여 자신을 준비하고 있지만, 자신은 아직 그것을 알지 못한다.

인류가 생각하는 것은 삶이 움직이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선지자는 무감각한 자와 무감각해져가는 자,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들에게 말한다.

그러나 선지자가 하는 말은 동요한 사람들의 마음과 가슴에 도달할 것이며, 기존 가치관과 가정, 기존 믿음과 단체에 그들 삶의 기반을 두는 데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가슴에 도달할 것이다. 그들은 깊고도 지독한 잠에서 깨어나도록 마음이 동요할 것이다. 선지자는 그들에게 말할 것이다. 그의 메시지는 그들을 부르기 위해 세상에 전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계시를 알아보고 계시에 응답하는 첫 번째 사람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지자는 이곳에 칭송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다. 그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려고 기적을 행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그에게 맹목적으로 될 만큼 선풍적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것은 모두 어리석음이며, 신의 실제 메신저는 결코 그런 적이 없었다. 그런 것은 메신저 사후에 지어낸 이야기들일 뿐이며, 메신저가 자기 민족과 문화에 죽임을 당한 후에 환상적인 이야기가 만들어졌을 뿐이다. 그런 것은 결코 메신저의 실제 삶이 아니다.

그런 이야기는 만들어 낸 것이며, 그런 기적은 모르는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또 자기 스스로 계시의 현실을 알아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려고 지어낸 것이다.

인류는 진정한 삶의 현실과는 무관한 믿음과 가정을 층층이 쌓아 놓았다. 마치 거대한 고대 사원처럼, 그 이야기들은 아름다움과 부패로 뒤덮이고 덧씌워졌다. 이런 환경에서 과연 새 계시를 받아들일 곳이 어디인가?

분명히, 메신저 혼자서는 신의 새 메시지를 세상에 가져갈 수 없다. 그래서 이제 마음이 동요된 이들이 그를 도와야 한다. 그들은 새 메시지를 배워야 하고, 공부해야 하며, 자신의 삶에 적용해야 한다. 또한 신이 준, 그들 내면에서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큰 음성과 힘을 찾기 위해, 앎으로 가는 계단을 밟아야 한다.

메신저는 사람들에게 권한을 주려고 이곳에 있으며, 사람들이 앎과의 태곳적 유대를 회복하게 하고, 세상에 다가오는 변화의 큰 물결에 대비하여 준비하게 하려고 이곳에 있다.

변화를 말하는 음성들이 많을 것이다. 예언을 말하는 음성들이 많을 것이다. 미래에 대해 끔찍하거나 바람직한 이미지를 투사하는 음성들이 많을 것이다. 신의 새 메시지를 계시한다고 주장하는 음성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한 음성만 있다. 왜냐하면 신이 세상에 새 계시를 줄 때는 항상 이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만일 계시가 많은 사람을 통해 온다면, 다른 버전들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 계시를 고칠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현재 생각과 믿음, 그들의 현재 종교와 문화에 맞게 고칠 것이며, 메시지는 그 명료성과 온전함과 초점을 잃을 것이다.

메신저가 되기 위해 준비된 단 한 사람만이 메신저가 될 수 있다. 이 시기와 이 시대를 위해 선지자가 되도록 부름받고 준비된, 단 한 사람만이 이 시기와 이 시대를 위해 선지자가 될 수 있다.

자신의 지성으로 세상의 상태와 미래의 어려움에 대한 인식을 드러낼 총명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오직 선지자만이 이것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고 어떻게 처리될 수 있는지 드러낼 수 있으며, 또 방향을 바꾸고, 현실을 인식하고, 지금까지 알았던 그 어떤 것과도 다를 미래에 대비하여 준비하려면, 사람들의 마음과 가슴 가장 깊은 수준에서 무엇이 변해야 하는지 드러낼 수 있다.

많은 음성이 있을 것이다. 그중 일부는 매력적이고 설득력 있으며, 고상하고, 논리 정연할 것이다. 그러나 오직 메신저만이 알고 있으며, 진짜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 오직 그만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오직 그만이 이 메시지를 받았으며, 오직 그만이 이 메시지를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부담은 듣는 자, 받아들이는 자에게 있다. 시험은 그들에게 온다. 계속 눈먼 채로 있을 것인가, 아니면 전에는 어둠만 있던 곳에 빛이 들기 시작할 것인가? 앎의 깊은 수준에서 응답할 것인가, 아니면 그저 자신의 사고방식과 믿음만을 투사할 것인가?

메신저는 시험에 통과했다. 그는 사람들을 확신시키기 위해 기적을 행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기적은 새 메시지 그 자체이며, 각자의 내면에 있는 앎의 힘과 현존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만일 누군가 “음, 그것은 나에게 충분하지 않아.”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며, 무지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기보다는, 자신이 그런 판단을 할 만큼 잘 알고 유능한 사람인 것처럼 보이려 할 것이다.

이것이 인류를 더 어리석게 만든다. 인류는 이제 힘을 가진 아이, 세상을 망치고 있는 아이, 우주의 강력하고 냉혹한 세력들이 자신을 지배하고 조종하도록 내맡기는 아이와 같다.

이제 신의 새 메시지는 단지 특별한 개인이나 보기 드문 세련된 지성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엘리트나 부자, 권력자나 고등교육을 받은 자들만이 다루는 영역이 아니다. 새 메시지는 일반 사람들이 앎을 인식하고 따르는 법을 배우고, 신의 새 계시로부터 안내와 충고, 경고와 축복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기 위한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당신은 이제 이 계시의 큰 필요성과 이 계시에 대한 큰 저항을 볼 것이다. 세상에 이런 순수한 어떤 것이 전해지면, 그것은 순수하지 않은 모든 것을 드러낼 것이고, 진실이 어떻게 관습과 편의, 야망과 부패로 퇴색되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빛은 어둠을 밝힐 것이고, 모든 사람이 자신을 위해 숨기고 있는 것을 드러낼 것이다.

신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신은 세상을 사랑한다. 앎이 없다면, 인류는 어리석고 제멋대로 굴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라. 여기에 비난은 없다. 분노하는 신은 분노하는 인간이 투사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하고 싶은 복수를 신이 해주기를 원하며, 그들 자신이 규정한 정의를 신이 구현해주기를 원한다.

그러나 신은 이러한 것들 너머에 있다. 인간의 어리석음이 무슨 재주로 모든 우주의 창조주, 셀 수 없이 많은 우주 종족의 창조주를 혼란스럽게 하겠는가?

비극은 인류가 신의 현존과 소통에 응답하지 않는 것이다. 그 결과, 인간 가족은 고통받고 있으며, 쇠퇴와 갈등과 자멸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런 엄청난 부정적 성향을 상쇄할 수 있는 지혜와 절제력이 아직은 세상 사람들에게 충분하지 않다.

이것은 시간의 종말이 아니다. 이것은 큰 전환이다. 다른 세상의 다른 삶으로 가는 전환이며, 우주에서의 고립된 삶에서 큰 공동체 삶으로 가는 전환이다. 큰 공동체 삶에서 인류는 접촉과 지구 보호를 위해 스스로 규칙을 제정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인류에게 미래가 있도록, 세상에서 새롭고 지속 가능한 삶으로 가는 전환이다. 이것은 인류 역사에서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만큼 엄청난 중요성과 충격을 주는 전환이다. 심지어 고대 문명의 붕괴마저도, 비록 그것이 극적이고 상징적이기는 하지만, 그런 것마저도 세상에 다가오는 변화의 큰 물결에서 오는 충격이나 인류가 큰 공동체 삶과 접촉하는 것에서 오는 충격과는 비교할 수 없다.

오직 메신저만이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참된 명확성으로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신의 새 메시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것을 받았으며, 이제 이것을 내놓아야 하고, 대변해야 하며, 사람들을 이 메시지로 불러들여야 한다. 이것은 엄청난 일이며, 의기소침하게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응답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이 계시를 받아들여 배우고 실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인류문명이 살아남아 성장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무게와 역기능에 바스러질 것인지, 그 여부는 개개인 모두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신은 앞을 보아야 하고, 마음을 열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비난을 제쳐두라. 당신 눈이 맑아질 수 있도록, 또 당신 귀가 들을 수 있고 당신 가슴이 알 수 있도록, 과거의 짐을 내려놓으라.

신의 새 메시지는 현재와 미래를 말한다. 이제 과거는 기억일 뿐이다. 당신은 과거로부터 지혜와 교훈을 가져오며, 과거로부터 개인과 국가의 공헌에 대한 감사를 가져오지만, 이제는 현재에 있어야 하며, 미래를 보아야 한다. 그리고 당신이 신의 새 계시를 겸손과 감사로 받아들일 수 있고, 배울 수 있다면, 새 계시는 당신에게 볼 수 있는 눈을 줄 것이다.

선지자는 당신의 도움과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 내면의 앎은 당신에게 그 방법을 알려줄 것이다.

공포나 부정 없이 미래를 직시하려면, 당신에게는 내면의 이 힘과 현존이 있어야 하므로, 새 메시지가 당신에게 왔다. 새 메시지는 세상의 종교를 대신하기 위해 여기 온 것이 아니라, 세상 종교들에 큰 역량과 큰 인식을 주기 위해 왔다. 그러지 않으면 인류가 가장 큰 시련을 겪게 될 미래에, 세상 종교들이 아무 쓸모가 없게 될 것이다.

선지자는 저명인사가 아니다. 그는 세상에 신의 구원을 보내기 위한 매개체이다. 그의 개인적 삶은 오직 기반일 뿐이다. 그의 개인적 관심사는 문화 속에서 살면서 나온 부산물일 뿐이다. 그러나 그의 개인적 인식은 창조주의 뜻과 힘, 그리고 세상을 위한 신의 메시지로 인해 바뀌었다.

그를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알아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축복받을 것이고, 그들 삶은 옳은 것으로 드러날 것이며, 세상에 그들이 있는 것은 인정받을 것이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은 강해질 것이며, 다른 방식으로는 얻을 수 없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을 것이다.

응답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과거를 이해할 것이며, 용서하지 못하는 것과 자신을 미워하는 것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은 앎으로 가는 계단을 밟음으로써,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분명히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인식되어야 하는 큰 진실이다. 당신은 이것을 이성으로 인식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성은 과거의 생각만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신 마음의 태곳적 통로를 통해 깊이 공명해야 한다. 그리고 그 통로의 문은 이제 당신 자신을 위해, 또 미래에 당신이 공헌하고 도울 모든 사람을 위해, 당신이 보고, 알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열려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