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3월 13일
미국 콜로라도 보울더에서
마샬 비안 서머즈가
받다
의문이 생긴다. “무엇이 세상을 바꿀 것인가? 무엇이 사람들을 위해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인가? 무엇이 인류를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지금 인류가 따르고 있고 아주 오랫동안 따르던 방향과는 매우 다른 방향으로 인류를 향하게 할 수 있는가?”
무엇이 세상을 바꿀 것인가? 단순히 세상의 상황만 바꾸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변화의 큰 물결이 세상을 바꿀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인류가 지닌 것보다 더 큰 가능성을 인류에게 제공하면서, 무엇이 실제로 인류의 방향을 바꿀 것인가?
그 답은 신비롭다. 그 답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며, 큰 경제적 변화도, 큰 사회적 변화도, 큰 정치 공약도, 새로운 정부도 아니다. 이것들은 모두 시민들의 상황을 바꿀 수는 있지만, 이런 변화들은 큰 대가, 큰 격변, 인명 손실,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개 한 국가의 국민들을 위해 크게 개선되지 않는다. 당신은 사람들의 상황을 바꾸어 삶을 조금 더 나아지게 하거나 훨씬 더 힘들게 할 수는 있지만, 지금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단순히 세상의 상황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상황은 이미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바뀌었고 앞으로도 바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인간의 운명을 새로운 방향으로 설정하고 인간 가족을 위한 더 큰 가능성을 제공하면서, 큰 진보를 가져오는 것이다.
우리가 말했듯이, 답은 신비롭다. 그 답은 개개인의 내면에 있다. 무엇이 개개인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것인가? 단지 자신에게만 봉사하기보다는 세상에 봉사하려는 더 큰 용기, 더 큰 자비, 더 큰 헌신 등, 새롭고 더 큰 동기를 무엇이 개개인에게 부여할 것인가? 무엇이 개개인의 진로를 바꿀 것인가?
그것은 바로 이 수준에서 일어난다. 왜냐하면 일어나는 모든 것, 인류가 창안하거나 결정하거나 표명하거나 초래하는 모든 것, 그것이 재앙적이든 긍정적이고 유익하든, 개인들의 결정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정들에 영향을 주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이때 선택은 실제로 당신이 생각할 법한 것보다 훨씬 더 제한적이다.
개개인은 신이 그들을 안내하려고 그들 내면에 심어 놓은 앎의 큰 힘의 안내를 받거나, 아니면 정치적·사회적 이념이나 압력, 다른 사람들의 여론, 자기 자신의 관점·믿음·이념에 지배를 받는다. 여기서 당신에게는 이성의 영역 너머에 있는 이 신비한 힘인 앎이 있다. 그리고 세상의 온갖 사고, 믿음, 이념, 사회적 압력, 사회적 조건화 등 다른 모든 것이 있다.
만약 당신이 지금과 같고 과거와 같은 세상, 인간의 엄청난 낭비·손실·고통으로 힘들게 나아가는 세상을 유지하고 싶다면, 세상의 가르침과 이념을 따를 것이다. 만약 당신이 과거와 같은 미래, 단지 더 크고 더 어렵기만 하고 더 많은 문제만 있는 미래를 원한다면, 세상의 가르침과 이념을 따를 것이다.
선택은 근본적이다. 이 이념보다는 저 이념을 선택하는 것도, 이 종교보다는 저 종교, 이 믿음보다는 저 믿음을 선택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이 국가보다는 저 국가, 이 정치제도보다는 저 정치제도를 선택하는 것도 아니다.
가장 큰 변화는 바로 개개인이 만들어 낼 것이다. 왜냐하면 일어나는 모든 것, 인류가 하는 모든 것은 결정을 내리는 개인들이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 차원이든 지역사회 차원이든 국가 차원이든, 그 결정들은 인류가 따를 방향과 인류가 직시해야 할 성과와 결과에서 가장 큰 변화를 만든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힘이 정치권력, 경제력, 사회 권력, 격변, 혁명, 정부의 변화, 국정 운영이라고 생각하면서, 권력을 쟁취하려 하고 권력과 우선권을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것이 바로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삶을 지속적으로 파괴하는 접근 방식을 낳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세상을 바꾸어 인류에게 큰 가능성을 제공할 것인가? 그것은 널리 인정받는 것인, 당신이 지금 하는 온갖 것일 수는 없다. 널리 인정받는 것은 오히려 동일한 것, 즉 더 맹목적이고 어리석고 착취적인 행동, 더 많은 파괴를 세상에 낳을 뿐이다.
그것은 다른 어떤 것, 즉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 어떤 것, 사람들의 생각이나 믿음에 담겨 있지 않은 어떤 것이어야 하며, 철학·이념·종교의 산물이나, 정치 성향의 산물이 아닌 어떤 것이어야 한다.
신의 힘과 현존은 사람들 각각의 내면에 있는 앎이라고 하는 깊은 지성 안에 심어져 있다. 이것은 당신이 세상에서 한 경험의 산물도 아니며, 당신이 이용하고 조작할 수 있는 어떤 것도, 당신이 사용하는 자원도 아니다. 이것은 당신 삶을 안내하고 당신 삶을 바꾸고 당신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힘과 현존이며, 당신이 삶과 당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힘과 현존이다.
바로 이 변혁이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이다. 왜냐하면 이 변혁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 영향은 이전에 자신들이 만들어 낸 영향과는 매우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훨씬 더 크고 더 심오한 영향을 미칠 것이며, 자신의 봉사와 존재와 마음 상태를 통해 매우 다른 삶의 경험을 보여줄 것이다. 그들은 약점이 있는 곳에 강점을 더할 것이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 영감을 더할 것이다.
사람들에게 앎길을 가르치는 것은 두려움, 불만, 사회적·정치적 억압과 같은 마음의 지독한 부담에서 해방되는 도구와 길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들이 부유하든 가난하든, 당신은 신이 그들에게 주고 싶은 것을 그들에게 준다.
이것이 세상 모든 종교의 핵심이지만, 세상 종교는 다른 믿음, 환상적인 상징, 신화, 의례, 정치적 신념과 억압으로 너무 덧씌워져서 이것을 찾기가 어렵다. 순수함의 증거는 식별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존재한다. 그 증거는 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인간의 인식과 인간의 동기를 집단적으로 전환할 만큼 충분히 많은 사람이 가슴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일어날 필요는 없다. 심지어 대부분의 사람에게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세상의 정신 환경을 바꾸고, 다른 윤리, 다른 표현, 다른 힘을 움직이게 하려면, 상당수의 사람에게 일어나야 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인류는 여전히 매우 원시적이고 경쟁적인 마음 상태에서 행동한다. 고귀한 사람들, 큰 비전과 큰 자비를 지닌 사람들이 있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여전히 매우 기본적이고 경쟁적인 수준에서 행동한다.
자원이 감소하는 세상에서 이것은 재앙이다. 사회적·경제적 압박과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세상에서 이것은 단지 경쟁·갈등·전쟁으로 이어질 뿐이다.
그래서 신이 새 메시지를 세상에 보냈으며, 그리하여 세상 종교를 새롭게 하고, 그 종교들의 핵심 가르침과 핵심 진실을 강조하며, 그 종교들의 유일한 근원을 강조한다. 하지만 새 메시지는 또한 매우 새롭고 놀랍고 순수한 어떤 것을 세상에 가져오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 다가오는 큰 물결에 대비해 인류를 준비시키기 위한 것이며, 지적 생명체로 이루어진 우주 큰 공동체와의 만남에 인류를 준비시키기 위한 것이다. 큰 공동체는 당신이 이곳 지구에서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경쟁적이다.
이 두 가지 큰 사건에 대비하는 것에는 필요에 의해 인류를 통합할 힘이 있다. 그리고 국가 간의 갈등과 불화를 극복할 힘이 있고, 집단들이나 부족들 간의 해묵은 경쟁과 자극을 극복할 힘이 있다. 또한 내적으로는 붕괴와 쇠퇴, 외적으로는 당신 주변 우주에서 온 경쟁자들과 개입자들로부터 지구를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해 사람들을 통합할 힘이 있다.
하지만 그리하려면, 개인들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회 질서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개선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인류 공동체는 범세계 공동체가 되어야 하겠지만, 어떤 종류의 공동체가 될 것인가? 억압하고 구속하는 잔인한 정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질서 있고 유익한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를 지원하려고 노력하는 국가들의 연합이 될 것인가?
외적으로 확실히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변화의 큰 물결이 커지고 다루기가 더 어려워질 때, 사람들이 생각하고 살아가는 방식, 서로 관계를 맺는 방식, 서로에게 기꺼이 제공해야 하는 도움 등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중심에는 진정한 선택이 있어야 하고, 가슴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것을 낳는 것에는 단순히 외적 사건만이 아니라, 내면에서 일어나는 더 신비로운 어떤 것도 있다. 자각과 전환이 있고, 계시, 개인적 계시가 있다.
즐거움과 안전보장, 안전과 만족 등,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해낼 수만 있다면 가지려 하고 유지하려고 하는 온갖 것보다 위험·비극·어려움에 개인을 깨우는 더 큰 힘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개인 내면에는 신비한 힘이 있으며, 내부 압력을 높이면서 분출하려는 화산처럼 그 자체의 압력을 만들어 낸다. 이것이 바로 개인적 계시의 힘이며, 개개인 안에서 점점 더 커지는 힘이다. 이 힘은 특히 개인들이 신비한 힘을 배우고 숙고하기 시작할 때, 또 그들이 큰 목적을 위해 이곳에 왔다는 것, 즉 단순히 생존하고 편안함을 지키거나 환상에 빠지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더 큰 방식으로 봉사하려고 이곳에 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할 때, 커진다.
이 잠재력은 사람들 각자 안에 있지만, 어떤 순간에는 이 잠재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어떤 사람들 안에 더 살아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잠재력이 표면에 더 가까이 있고, 드러날 준비가 더 되어 있다. 천사의 무리가 주의 깊게 지켜보는 이들이 바로 이들이며, 이들이 깊고 괴로운 잠에서 깨어나 자기 내면에서의 새로운 경험, 새로운 목적의식과 운명을 깨닫고 세상과의 관계에 대한 관점에서 큰 변화를 깨닫는 사람들이다.
표면 가까이에 있는 바로 이들이 지구를 관장하는 위대한 천사 세력의 관심을 받을 것이다. 훌륭한 정원사들처럼, 천사들은 땅에서 어느 새싹이 돋아나고, 어느 묘목이 자라서 꽃이 피고 가능성을 보여주는지를 보려고 기다린다. 누가 움직이는가? 누가 이전 삶의 누에고치, 이전 삶의 압박과 제약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가?
세상을 바꾸는 것은 이 내적 요소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은 단지 사람과 자원의 이동일 뿐이다. 그 이동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면 어느 정도는 이롭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인간의 이 큰 동기가 있어야 하며, 그 이면에는 앎의 힘이 있어야 한다.
현재 상태로는 인류는 변화의 큰 물결에 대비하여 준비되지도 않았고, 이미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큰 공동체와의 만남에 대비하여 준비되지도 않았으며, 인간의 나약함과 기대를 이용하려고 외계에서 이곳에 온 소규모 그룹의 종족들로 인해 이미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개입에 대비하여 준비되지도 않았다.
이 순간의 상황을 보면, 인류는 변화의 큰 물결에 압도될 것이고,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개입으로 위태롭게 될 것이다.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람들을 이용하기가 가장 쉬울 때는 그들이 가장 큰 어려움에 직면하고, 그들의 상황에 가장 압도될 때이다. 개입자들은 무력이나 군사력을 쓰는 것이 아니라, 설득력과 유인을 이용한다.
오직 신의 새 계시를 통해서만이 이것을 알 수 있고, 우주의 삶을 알 수 있으며, 왜 더 앞선 선진 종족들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데 군사력과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정신 환경에 존재하는 마음의 힘과 설득력을 사용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처럼 정신 환경의 힘을 사용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인류는 여전히 미숙하고 야만적이다. 인류는 자신의 가장 큰 힘이 어디에 있는지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인류에게는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준비는 신에게서 와야 하고, 변화의 자극도 신에게서 와야 하며, 개인의 변혁도 신에게서 와야 한다.
당신은 자신을 변혁할 수 없다. 그것은 당신의 관념이나 개념이나 상황의 변화일 뿐이다. 당신이 열심히 노력하고 전념하여 자신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 내면에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당신은 여전히 두려움의 안내를 받고, 여전히 판단과 연상으로 가득 차 있으며, 여전히 사회적 조건화의 노예이다.
그래서 변혁은 내면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세상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점점 더 어려워지고, 점점 더 압도할 것이다. 사람들은 준비되지 않을 것이고, 이런 세상에 대한 그들의 최종 반응은 혼란스럽고, 좀처럼 생산적이지도 않고 건설적이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당신에게 열쇠, 단서, 놓친 요소를 제공한다. 앎과 함께하지 않으면, 당신은 자신의 외적 삶을 바꾸려고 하겠지만, 당신의 내적 삶이 계속 문제를 일으킬 것이고, 당신은 신이 당신에게 준 큰 힘을 얻을 수 없을 것이며, 그 힘으로 다른 사람들과 세상을 향한 지속되는 사랑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인류가 진로와 방향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에는 인류의 외적 활동과 우선순위에서의 큰 변화가 필요하고, 또한 가슴의 큰 변화, 즉 인간의 인식과 결정에 동기를 부여하는 것에서의 큰 변화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지게 하고, 삶에 용기 있게 접근할 수 있게 하고, 그 순간에만 풍요로워지려고 애쓰기보다는 인류의 안녕에 장기적으로 투자하도록 이어지게 해야 한다.
이러한 큰 비전과 함께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를 보장받을 것이다. 사람들은 단지 순간만을 위해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무모하게 소비하며 살지 않을 것이다. 인류 복지와 미래 세대는 지금보다 더 큰 우선순위가 될 것이다. 지금은 미래가 소비되고 낭비되고 있다. 실제로 아무도 앞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현재를 위한 것이며, 단기적이다. 미래에 대한 인식과 생각, 수평선 너머에서 무엇이 다가오는지에 대한 인식과 생각이 거의 없다.
가슴의 변화는 관점의 변화, 우선순위의 변화, 생각의 변화, 행동의 변화, 관계의 변화를 가져오고, 다른 이들이나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의 변화를 가져온다. 만약 당신이 가장 근본적이고 심오한 수준에서 가장 큰 결과와 가장 큰 이익을 가져오는 변화를 일으키고 싶다면, 그 변화는 이 깊은 수준에서 일어나야 한다.
외적으로 가능성을 보여주고 유익한 일을 할 때, 그 일이 무슨 일이든 앎으로 가는 계단을 밟는 것이 수반되어야 한다. 신의 새 계시는 앎으로 가는 계단을 순수한 형태로 제공했으며, 이것은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매일매일 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 삶과 활동이 그들 내면에 있는 큰 힘과 현존의 안내를 받을 수 있게 하였고, 그들이 자신의 생각과 삶과 상황을 조정하여 이 힘이 드러나도록 허용하고 세상과 그 선물을 공유할 수 있게 하였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도, 당신이 믿는 것도 아니며, 당신 내면에서 이런 큰 변화가 없는 한 당신이 고수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믿는 것 때문이고, 붙잡고 있는 것 때문이며, 지금까지 자기 삶에 투자한 것에 집착하는 것 때문이다. 그들은 보고 싶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으며, 자신의 위치를 재고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그 변화는 더 깊은 수준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람들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변화의 큰 물결을 맞이하여 무너질 것이며, 압도당할 것이다. 그들은 변화의 큰 물결이 다가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들의 삶은 취약하고 불운한 위치에 있었다. 물결이 연이어 오면, 그것이 경제적이든, 환경적이든, 사회적이든, 정치적이든, 그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다. 그들은 변화의 큰 물결에 준비되지 않았으며, 현재를 살면서 동시에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그들을 안내할 앎의 힘을 지니지 못했다.
당신의 책임은 앎으로 가는 계단을 밟는 것, 즉 자신의 외적 삶에서 해야 하는 것과 내적 삶을 열기 위해 해야 하는 것에 대한 신의 계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당신은 미래를 꾸며내지 않아도 된다. 당신에게는 그저 올바른 동기만 있으면 된다. 당신은 미래를 개념화할 필요도 없고, 그 미래가 모든 사람에게 어떻게 작용할지 개념화할 필요도 없다. 그저 힘과 현존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오직 신만이 한 개인으로서 당신을 무엇이 복원할지, 또 인류를 무엇이 복원하고 회복시켜 미래에 대한 큰 가능성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게 해줄지 안다.
신이 아는 것이 당신 내면에 심어져 있다. 그것은 결코 신을 떠난 적이 없는 당신의 일부이고, 여전히 연결되어 있는 당신의 일부, 세속적이지도 타락하지도 않은 당신의 일부, 강력하고 명료하며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당신의 일부이다.
이것을 당신의 이해로 삼으라.